"6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일제시대 때 해외로 강제징용을 당해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 수습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됩니다. 죽기 전에 유해라도 한번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두 살 때 일제에 의해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면서 66년 동안 아버지 없이 살아온 류연상(68)씨. 그가 최근 국회의원 수 십 명에게 장문의 편지 한 통씩을 썼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의 존속기한을 늘려달라는 것. 류씨는 "스무 살에 과부가 된 뒤 평생 수절한 어머니(87)의 소원이 죽어서라도 남편 옆에 묻히는 것"이라며 "일반 국민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어서 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해외에서 유명을 달리한 강제징용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국내로 봉환할 목적으로 2004년 말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립됐다. 2008년 사할린지역에서만 580기의 징용자 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의 올해 예산편성 과정에서 위원회가 배제되면서 현재 위원회의 활동이 사실상 정지상태. 더군다나 위원회의 존속기간이 올해 말까지이기 때문에 조만간 존속기한이 연장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유해 발굴이나 국내 봉환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될 처지이다. 류씨는 "당시 3만~4만명의 한국인들이 사할린으로 끌려 갔지만 6ㆍ25전쟁에 이은 냉전체제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며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해 온 일은 마무리 짓자는 차원에서 진정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올 가을 내년 예산을 편성하기 이전에 위원회의 존속기한이 연장돼야 한다"며 "이번 4월 국회에서 위원회의 수명이 연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독약품에서 이사로 정년퇴직을 한 류씨는 아버지가 없었던 탓에 독학과 야학으로 공부를 하는 등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류씨의 부친은 사할린 코르사코프지역 작업장으로 끌려간 뒤 곧 해방을 맞았지만 소련 당국의 억류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류씨는 "백방으로 알아봐도 생사 확인이 되지 않던 아버지가 1976년에 '아들 보아라'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와 홀로 사할린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며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듬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과 소련은 미수교 상태여서 공산권인 사할린 땅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류씨는 이후 '죽기 전에 남편 묘에 술 한잔 따르고 싶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2007년 8월 코르사코프로 향했지만 묘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2년 뒤 기적이 일어났다. 2007~2008년 정부차원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이뤄진 위원회 현장조사팀 촬영사진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비석을 발견한 것. 망자의 아들이 '연상'이라는 글귀도 있었다. 류씨는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하지만 묘를 찾고도 위원회의 활동 종료로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흐른 만큼 더 늦게 전에 사할린 동포들의 유족들에게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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