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이하 국과위)가 28일 공식 출범한다. 자문기구에서 대통령 직속 독립 상설행정위원회로 위상이 높아지긴 했는데, 출범 모양새가 어째 불안하다.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배분∙조정하고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양대 핵심기능 중 한쪽이 빠진 '반쪽' 위원회로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성과 평가 가능할까
국과위의 양대 기능 중 성과평가에 대한 내용은 '국가연구개발 등의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평가법)' 개정안에, 예산 배분∙조정은 '과학기술기본법(이하 기본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지난해 말 여당이 강행처리한 기본법 개정안은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28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평가법 개정안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상정은 됐으나 이달 초 법안심사소위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기본법 개정안을 여당이 이른바 '날치기'로 통과시킨 데 대해 야당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분석이다.
국과위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가시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예산 배분부터 성과 평가까지 R&D 전반을 관할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됐으니 성과 평가 기능은 원래대로 기획재정부에 남아 있는 상황.. 국과위는 출범부터 힘이 빠진 셈이다. 국과위 측은 4월 국회에 평가법 개정안을 다시 올린다는 계획이다.
국과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평가 기능은 출범과 함께 수행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경택 국과위 정책조정기획관은 "R&D 성과 평가 업무를 담당할 인력들이 출범과 함께 기재부에서 국과위로 넘어오고, 기재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내는 성과 평가 결과를 공유할 수 있으니 법만 갖춰지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심의 결과 무게 얼마나 될까
예산 배분∙조정 측면에서도 국과위가 실질적인 권한을 확보했는지 의문이다. R&D 관련 부처나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필요한 예산을 국과위에 요청하면 기본법 개정안에 따라 국과위는 국방과 인문사회 분야를 제외한 국가연구개발사업 4가지에 대해 투자우선순위와 투자규모, 부처간 역할분담 등을 검토∙심의한 다음 기재부에 제출하게 된다. 과거 기재부가 하던 일을 국과위가 하는 것이다. 국과위가 심의할 4가지 사업은 5년 이상 중장기 대형 R&D와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추진하는 R&D, 기초과학 R&D, 부처 간 중복되거나 시설 및 장비 구축이 필요한 R&D 등이다.
문제는 국과위가 제출한 내용이 얼마나 무게를 가질 수 있느냐다. 국과위가 심의한 배분∙조정 내용이 넘어오면 기재부는 이를 토대로 실제 예산을 편성한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여전히 많다는 게 과학계의 우려다. 국과위의 조정안이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 무시된다면 결국 상설 위원회가 아닌 자문기구에 그쳤던 과거 국과위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정 기획관은 "과거 국과위 역할은 예산의 증액과 유지, 감액 등 배분∙조정 방향만 기재부에 제시하는데 그쳤지만, 새로 출범하는 국과위는 구체적인 금액을 명시한 내역을 넘기게 돼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며 "기재부가 국과위의 배분∙조정 내역을 변경하려면 서로 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기본법에는 기재부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국과위의 심의 결과를 반영해 다음 연도 예산을 편성하게 돼 있다. 어떤 상황이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느냐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예비타당성조사가 필요한 대규모 R&D에 대해선 국과위의 권한이 비교적 명확하다. 예산이 500억 원이 넘는 R&D에 대해서는 기술개발을 해야 할지 사전에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친다. 예비타당성조사 착수 전 기술성을 검토하는 게 국과위의 역할이다. 개정된 기본법에 따르면 기재부는 국과위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출한 사업 중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을 골라야 한다. 과거에는 국과위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사업도 기재부 권한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현장 의견 반영 원활할까
차관급인 국과위 사무처 상임위원은 김차동 전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조정실장과 김화동 전 기재부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장이다. 1급인 사무처장은 이창한 전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정책관이 맡았다. 이에 대해 민간 과학단체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주요 보직을 관료로 채워 현장 과학자들의 의견을 원활하게 반영하겠다는 국과위의 원래 취지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도 민∙관의 시각 차가 커 보인다. 정 기물活?"사무처만 보면 절반 이상이 관료 출신이지만 운영위원회와 전문위원회, 특별위원회 등 국과위 산하 위원회 조직 약 150명은 거의 민간 출신"이라며 "현재 정부조직 중 민간 출신 인력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공모 중인 민간 출신 인력까지 모두 국과위에 본격 참여하려면 5월은 돼야 한다. 출범 초기엔 관료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과위는 연구자들이 실험을 제쳐놓고 기재부를 찾아가 연구비를 따기 위해 '줄 서기' 해야 하는 상황을 막고 국가 전체 R&D를 총괄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과학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만든 조직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