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들이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이 조작된 복제약을 팔고도 줄줄이 배상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나가는 데는 검찰과 법원의 제약사 봐주기(한국일보 29일자 1, 3면)뿐만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사실상 제약사들의 편에 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식약청은 재판에서 생동성 시험의 중요성에 대해 증언하기를 거부했는가 하면, 조작사건에 연루됐던 시험기관 직원을 식약청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이 직원은 건보공단과의 소송 대책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 이 사건 관련 재판에서 재판장은 "생동성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전문가들의 증언을 들어보고 싶다"고 원고와 피고에게 제안했다. 피고는 조작된 시험결과로 약효가 의문시되는 복제약을 팔아 모두 1,200억원에 이르는 건강보험 약제비를 받아간 제약사들이었고, 원고는 부당하게 받아간 약제비를 돌려달라고 94개 제약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강보험공단.
건보공단은 생동성 검사 관할 부처인 식약청 소속 전문가들에게 직접 나서 증언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 소송에서 관련 정부기관의 전문가가 소송 보조참관인 등으로 나서 지원사격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약사, 제약사들이 즐비하고,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관리하는 관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식약청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거부했다. 결국, 재판부는 제약사들이 내세운 전문가가 "생동성 시험이 약효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증언만 들었다.
식약청은 건보공단에 증언할 다른 민간 전문가를 소개해 줬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문가도 증언을 거부했다. 실제 식약청은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도 "전문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알려줬는데, 해당 전문가들은 모두 제약사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식약청이 조작을 이유로 허가취소를 해서 공단이 소송을 내게 됐는데, 식약청이 조작의 정도와 중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공하거나 발굴해 주지 않으니, 비전문가 입장에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식약청 관계자는 "제약회사들이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거나 한 것은 거의 없지 않겠느냐"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재판을 위해서라도 "악의적으로 조작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기준 같은 것을 제시해주면 안되느냐"고 묻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생동성 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시험기관 연구원이 식약청 직원이 돼서, 원고인 건보공단과의 소송 대책회의 자리에 나온 적도 있었다. 이 직원은 형사적으로 기소돼지는 않았지만, 민사소송에서 피소된 인물로 피고가 원고의 대책회의에 참여한 셈이다. 식약청은 "민사소송은 공무원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사실 이 직원도 제약회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따랐던 약자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대책회의까지 참여하게 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식약청이 이처럼 생동성 소송에 소극적인 이유는, 제약회사와 업무 연관이 많은 약사들이 주축이고, 또 조작사건에 전 식약청장(박종세)이 연루됐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생동성 시험기관 관계자들은 "식약청도 조작이 방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애초 조작 제보가 관할 기관인 식약청에 접수되지 않고 국가권익위원회에 접수됐던 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