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유독 춥고 길었다. 영하 20도의 혹한은 살갗을 에었고, 연평도 포격의 충격에서 사람들은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었다.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겨울 끝자락은 최근 일본 도호쿠(東北)대지진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긴 겨울 동안 잠시나마 우리의 지치고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었던 샤갈이 한국을 떠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10일 개막한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이 27일 폐막했다. 한국일보사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이번 전시의 총 관람객은 60만명으로 집계됐다. 올 겨울 미술 전시회 가운데 최다 관람객이다. 2004년 서울에서 첫선을 보였을 당시에 비해 10만여명이 더 찾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전시는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30여곳의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샤갈의 작품 164점을 모은 두 번째 샤갈 회고전이었다. 2004년 처음으로 선보였을 당시에 비해 작품수는 50여점 더 늘어났다. ‘도시 위에서’ 등 유명 작품 10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운 작품이었다. 특히 이번 전시를 빛냈던 것은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1920)다. 모두 7점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20년 모스크바에 있던 유대인극장 내부장식화로 제작됐다. 총 8점이 모여야 완성되지만 나머지 1점은 러시아 스탈린 정권이 유대인을 핍박하던 시절에 불타 없어졌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50년 동안 극장 창고에 방치돼 있었고, 87년 스위스 재단의 도움으로 복원됐다. 이 작품들의 보험평가액은 무려 2,800억원 수준.
샤갈의 그림 가운데서 ‘도시 위에서’와 ‘산책’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지난 전시에서 다른 전시 일정과 겹쳐 진품이 오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는 이번 국내 전시를 마지막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트레티아코프갤러리에서만 전시된다. 작품 훼손을 이유로 더 이상 외국 미술관이나 전시에 대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전시 마지막 날인 26일에도 샤갈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하루에 1만5,000여명이 다녀간 날도 있었고, 평균 6,000여명이 미술관을 찾았다. 특히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대학생 정효재(25)씨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샤갈의 그림들이 취업 걱정 등 힘겨운 삶을 달래 줬다”고 말했다. 안준민(9)군은 “아름답고 재미있는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전시를 높이 평가했다. 미술평론가 강수미씨는 “유명 작품 위주로 전시되는 구성 방식이 아닌 연대기와 특정 경향별로 작품을 나눠 전시한 구성이 특히 좋았고, 샤갈의 풍부한 작품을 전시해 전체적 예술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였다”고 평했다. 또 “지난 샤갈전은 관객이 몰리면서 군중심리 때문에 전시를 찾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번 전시는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험적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살려 아름다운 색채로 형상화한 샤갈의 그림에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순주 전시총괄감독은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고, 사랑 행복 가족 등 인류 보편의 주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한 샤갈의 그림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작품은 어렵게 구한만큼 진가를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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