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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오감을 시에다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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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오감을 시에다 담았다

입력
2011.03.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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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김윤이 지음/창비 발행ㆍ176쪽ㆍ 7,000원

빨간 살점 헤적이며/꽃은 피어나고/꽃숭어리 부레처럼 부풀어오르네/작은 물고기 잘바닥잘바닥/밤새 빨간 두 눈으로 앉아 있는 동안//오렌지는 파랗네/슬픔은 여태 익지 않았네"('오렌지는 파랗다' 중).

슬픔은 여태껏 익지 않은 모양이다. 덜 익은 파란 오렌지처럼. 2007년 등단한 김윤이(35)씨의 첫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은 충혈된 눈으로 아직 더 슬퍼하고, 더 아파할 게 많다고 속삭인다. "부디, 꽃 필 자리에는 앉지 말아주십시오/내내 아프겠습니다"('꽃 필 자리' 중)처럼.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발목이 부러지거나 한쪽 귀가 삭제되거나 혓바닥이 갈라진 화자의 육체도 어딘가 구멍이 나 있는 우리의 약하고 불완전한 삶을 보여 준다.

시인은 이 푸르스름한 상처와 우울의 세계를, 그러나 원색의 명징한 이미지와 리드미컬한 언어로 매우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예컨대 붕어빵 노점상 부부를 묘사한 '참붕어가 헤엄치는 골목'만 봐도 그렇다. "붉은 지느러미 천막이 펄럭이는 리어카에서/노글노글한 반죽 치대는 부부/싱싱한 붕어를 물어올리고 있다/뱃속 가득, 통통하게 팥알 밴 것들/.../가끔씩 손을 비비다가 서로의 손을 맞잡는/붕어빵 부부 손마디마다 입질로 달궈진 손끝이 빨갛다." 삶의 고단한 풍경마저도 탐미적이라 할 만한 감각적 시어들로 길어 내고 있는 것이다.

추위와 씨름하는 대가족, 시장통의 노동, 눅눅한 반지하방 등 남루한 삶을 그리는 시들도 깊은 서정성 한편으로 언어적 생동감이 파릇파릇하다. 덜 여문 과일을 먹을 때의 떫으면서도 시큼한 맛 같다고 할까. 문학평론가 오연경 씨는 해설에서 "시인은 전통적 협화음과 현대적 불협화음을 엮어 자신만의 음계를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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