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한편의 세계사/토르 고타스 지음·석기용 옮김/책세상 발행·744쪽·3만2,000원
달린다는 행위 자체는 무척 단순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인 달리기의 세계사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토르 고타스가 지은 <러닝_한 편의 세계사> 다. 러닝_한>
달리기가 인류의 진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이채롭다. 200만년 전 인간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짐승을 사냥하던 시절, 기후가 바뀌어 산림지대가 사바나로 변하면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책은 이런 환경이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에게 커다란 이점을 제공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결국 오래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를 선택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달리기의 의미 역시 바뀌어 왔다. 책은 왕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외교적인 면책특권을 가졌던 잉카의 전령 이야기로 시작한다. 차스키라 불린 이들은 사방으로 뻗어 있는 길들을 따라 하루 320㎞가 넘는 거리를 주파했다.
고대 수메르인과 이집트 왕족들은 자신에게 왕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분노한 신들을 달래기 위해 100마일 이상 달려야 했다. 책에 따르면 람세스2세(기원전 1303~1213)는 대관식에 앞서 피라미드 앞에서 자신이 왕좌에 있을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150야드(137미터)의 트랙을 끝도 없이 달렸다.
18세기 말을 이용한 교통수단과 도로가 발달하면서 전령은 거의 불필요한 직업이 됐다. 이후 사람들은 달리기를 경주로 즐기기 시작했다. 1822년부터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공원에서는 매년 5월 1일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1970년대에 시작된 전 세계적 조깅 열풍에 힘입어 달리기는 남녀노소를 초월해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이자 일상의 즐거움이 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2011도쿄마라톤에는 무려 3만5,000여명이 참가했다.
책은 달리기는 어른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어린애 같은 활동이며, 오로지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의해서만 고양될 수 있는 자유의 감정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그 의미는 변해 왔지만 독특한 매력은 마찬가지다.
책 24장 '조깅혁명'에서는 어느 조깅 애호가가 경험한 희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우주에서 오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내 인생의 낙관적인 전망을 느꼈다. 나는 우주의 아이였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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