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앙드레 보나르 지음ㆍ1권 김희균, 2, 3권 양영란 옮김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인 이야기> 에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본질적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서양 문명의 근원적 상상력으로서 그리스적인 것의 요체는 무엇인가? 낭만적이며 나아가 신성하기까지 한 신화적 세계였을까? 그리스인>
무엇보다 그들은 "밥 먹듯 전쟁을 일삼아 왔던" 민족이다. 동시대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온갖 미신과 혐오스러운 풍습이 가득했던 원시 민족의 하나였다는 점을 책은 주지시킨다. 고대 그리스를 당대 타 지역과 마찬가지인 원시사회의 하나로 보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를 들여다보는 거울로 호메로스 등 위대한 시인들의 서사시를 동시에 등장시키는 이 책은 나머지 절반의 진실, 즉 그들이 또한 꿈꾸는 데도 열심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시국가를 삶의 단위로 택했던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언제나 바다 너머를 꿈꾸면서 살았던 것이다.
책의 서장을 여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립은 약탈과 전쟁, 가족을 위한 사랑 등 인간 세상을 관류하는 영원한 주제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크게 보아 저 둘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해 온 인류사를 상징하는 듯 하다. "언제든 야만 상태로 회귀할 준비가 돼 있는 아슬아슬한 문명"(1권 213쪽)은 바로 21세기 인류의 딜레마 아닌가. 여인들이 성을 무기로 남성들의 전쟁을 없앤다는 내용을 담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뤼시스트라테'(2권 373쪽)의 상상은 이런 점에서 오늘 봐도 신선하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고대 그리스란 유한한 특정 시공간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행복한 시대"라는 루카치식의 그리스 읽기에 깊이 침윤돼 있다. 이런 점에서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에우리피데스에서 알렉산드로스까지' 등 익히 알려진 위인들을 중심으로 세 권의 기본 얼개가 짜여 있는 것은 무척 적절하다. 그들이 누린 행복의 구조. 내적 논리를 이해하는 데 큰 비중을 할애하는 이 책은 그래서 정치와 경제를 요령 있게 틈입시키며 문화와 과학이라는 대양을 유유히 탐사한다.
보나르는 스위스 로잔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그리스 어문학자다. 철저한 인문주의자인 그는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상황에서는 강단을 박차고 반파시즘 대열에 참여하기도 했다. 책은 그가 그리스 문화의 본질을 파고든 30년 세월의 결과물이다. 1954~59년 세 권으로 출간됐던 이 책은 반세기를 지나 한국에서 번역본을 갖게 됐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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