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를 만난 건 일본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의 한 대피소였다. 그의 첫마디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였다. 대피소가 너무 춥다는 말도 덧붙였다. 도쿄에 살고 있는 조카는 자신에게 오지 못한다고 했다. 기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칠순이 넘은 그의 목소리는 이미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피해 현장을 취재했다. 수많은 이들의 사연을 접했고, 그들의 고통을 봤다. 추위에 떨고 허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지진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일본 당국은 비축해 놓은 쌀과 기름을 곳간에 가둬두고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일본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하는 이들은 이를 '일본 관료제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관료제 특유의 폐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도쿄대학에서 일본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한 지인은 "원래 도호쿠 지역은 일본에서 역사적으로도 소외된 곳"이라고 말했다. "도쿄와 오사카 등 남부 주요 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원전 문제를 눈앞에 두고 평소에도 관심을 안 갖던 그 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분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미야기현 등 주요 피해 지역이 '산업 벨트가 전혀 없는 낙후된 곳'인 것은 맞다. 소외된 이 지역 주민들이 느껴왔던 서러움은 그 동안 여러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서러움에는 원전에 대한 것도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은 사실 도호쿠 지역민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시설의 위험성은 후쿠시마현이 안고 있고, 전력의 혜택은 도쿄 등 '잘 사는 동네'가 가져간 셈이다. 지금 도호쿠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일본 정부가 과연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이미 정부에 대한 불만이 피해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24일 오전 도쿄를 떠나기 전, 게센누마에서 만났던 그 노인이 생각났다. 대피소에 전화를 했지만 "현재 이곳에 없습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 전인 23일 일본 현지 언론은 대피소에서 사망한 노약자의 수가 35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 노인, 조카와 함께 도쿄로 갔을까?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