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은막 밖 사생활은 영화만큼 화려했지만 불행의 연속이기도 했다.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했고 8번 헤어졌다. 특히 영국배우 리처드 버튼(1925~1984)과의 사랑은 두고두고 영화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세기의 사건이었다.
테일러의 남성편력은 10대 때부터 명성을 떨쳤다. 17세 때 백만장자와의 데이트로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했다. 1950년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호텔의 후계자 콘라드 힐튼과의 웨딩마치를 시작으로 1991년 공사장 인부 래리 포텐스키와의 마지막 결혼식까지 그의 결혼 이력은 한편의 서사극이었다. 그는 비행기 사고로 죽은 세 번째 남편인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의 친구 팝가수 에디 피셔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세간의 비판에 그는 “그럼 혼자 자란 말이냐”고 일갈했다.
그의 남성편력의 정점은 다섯 번째 남편 버튼과의 사랑이었다. 유부녀 유부남이었던 테일러와 버튼은 1960년 ‘클레오파트라’로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1967년 결혼식을 올렸고 부부로 지내며 10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교황청의 비난까지 샀던 사랑은 버튼의 알코올중독을 두고 두 사람이 다투면서 이별수순을 밟았다. 1974년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했다가 1975년 다시 결혼했다. 그리고 네 달 만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두 번 결혼하고 두 차례 갈라섰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나지 않았다. 테일러는 “결혼한 남자 7명 중 버튼이 인생의 사랑이었다”며 스위스에 있는 버튼의 무덤 곁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5번 결혼한 버튼도 1984년 “가장 사랑한 여인은 테일러였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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