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공유제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보다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불법적인 부분을 논해야 합니다. 이익공유도 중요하지만 현행법상 불법인 것부터 일벌백계 해야 합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2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총무 정병진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초청포럼에서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것이 국내 산업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안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관행을 동물원에 비유했다. "중소기업은 삼성이나 LG, SK 등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불공정 독점계약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맺게 되는데 그 순간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 SK 동물원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연구개발 투자 등을 하지 못한 채 동물원에서 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시장확보에 대한 불확실성과 부족한 자본 때문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구조적인 불공정 거래의 틀에 포섭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꼽았다. 그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척박한 것은 대기업 시스템통합(SI)업체 때문"이라며 "이들 SI 업체들이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식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고, 또 이들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계속되다 보니 중소기업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고 산업인력을 부족하며 국가경제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중소기업은 한 국가의 경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위험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씨가 말랐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의 중견기업 비중은 0.2%에 불과해 매우 불안정하다"며 "프랑스와 독일은 종업원 250명 이상인 중견기업 비중이 한국보다 각각 4배, 11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어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정부 감시기능이 강화돼야 하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위에 제소하는 것의 10배, 100배에 달하는 불법적인 부분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며 "공정위 제소는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를 끊는다는 각오를 해야만 가능한데 실제 제소하더라도 공정위에서 고발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대기업 총수의 선심성 상생경영 발언 역시 실천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수가 상생을 위해 1조원을 내놓는다고 선언해도 현업을 담당하는 팀장과 팀원이 수익만 감안하는 인사고과 때문에 상생이 불가능하다"면서 "인사평가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대기업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IT창업 열풍이라는 세계적 상황에 지금 우리는 완전히 소외돼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5년, 10년 뒤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중소 벤처기업이 싹을 틔울 수 없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희선 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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