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재벌그룹 회장 수사에 다시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중희)는 22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계열사 지분 헐값 취득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과 관련,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9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그룹 본사와 인근 계열사 등에 검사와 수사관 등 30여명을 보내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각종 전산자료를 확보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시기가 문제였지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국세청이 담 회장을 세금 수십억원을 탈루한 혐의가 짙다며 고발함에 따라 광범위한 내사를 진행해왔다.
검찰과 국세청에 따르면 담 회장은 그룹 계열사인 온미디어가 2000년 6월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사들여 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BW 행사가격을 고의로 낮게 책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담 회장은 1년 뒤 온미디어의 신주인수권 33만주를 2억원에 사들였고, 2005년 6월 16만5,000주의 신주인수권을 주당 2만5,000원에 행사(41억2,500만원)해 온미디어 주식을 매입했다. 담 회장은 지난해 6월 온미디어를 130여억원을 받고 CJ그룹에 매각하면서 주식 취득 5년 만에 87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담 회장이 고의로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낮게 책정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겼거나 결과적으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는지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오리온그룹이 강남구 청담동에 고급 빌라를 신축하면서 빌라 부지를 시행사에 헐값으로 매각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오리온그룹은 청담동 일대 창고 부지 등을 2006년 시행사에 매각한 뒤 그룹 건설 계열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고급 빌라를 지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당시 인근 시세는 3.3㎡당 5,000만원 정도였지만 오리온그룹은 3,000만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리온그룹은 비자금 조성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검찰은 압수물과 각종 제보에 대한 분석을 끝내는 대로 오리온그룹 임직원과 BW 발행에 관여한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오리온그룹은 동양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둘째 딸 이화경 오리온 사장의 남편인 담 회장이 이끌고 있는 재계의 대표적인 사위 경영 기업이다. 재계 서열 30위권 정도의 기업으로 지난해 미디어 사업을 CJ그룹에 매각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의 자체 인지가 아니라 국세청 고발로 시작됐지만 BW 저가 발행 등은 시세차익을 챙기거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른 대기업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라 수사의 향방에 재벌그룹 등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ㆍBW)
채권을 발행한 기업의 신주를 미리 약정된 가격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 투자자들은 이자를 받으면서 만기에 원금을 받을 수 있으며 일정기간에 신주 교부를 청구할 수도 있다. 발행 기업의 주가가 약정된 매입가를 웃돌면 신주를 인수해 차익을 얻을 수 있고 매입가를 밑돌면 인수권을 포기하면 된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