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병상련 일터… 장애인이 장애인 돕는 일 해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유미경(45)씨. 최근 표정이 밝아졌다. 지난 18일부터 꿈에 그리던 취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의 직장은 자세 교정기와 휠체어 등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이지무브(주). 남의 도움에 의지했던 그가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을 돕는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유씨의 주임무는 미싱. 23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공장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미싱대에 앉아 장애 아동용 유모차에 들어 갈 시트에 정성스레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글로 쓴 질문에 그는 큰 입모양으로 "꿈만 같아요"라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옆에 서 있던 유씨의 파트너 이지현(29)씨도 어느새 함박 웃음을 짓는다. 그는"일한 지 며칠 만에 언니의 입 모양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안다"며 "함께 일하다 보니 보통 사람들과 장애인의 경계가 허물어 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일하는 이지무브(주)는 장애인 보조기구와 재활기구를 만드는 전문 사회적 기업. 한마디로 장애인의 이동 기기를 만드는 업체다.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이 서비스 업종에 집중된 것과 달리 제조업체인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8월 창립 개소식을 가졌으니 이제 걸음마인 셈.
하지만 그 동안 이룬 성과가 적지 않다. 벌써 700여대의 자세 교정기와 장애 아동용 유모차를 생산했다. 일본, 독일의 수입 제품보다 30~50% 가량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주문자의 체형에 맞게 생산하다 보니 사용자의 만족도도 높다. 그 동안 국내 장애인 보조, 재활기구의 90% 이상은 고가일뿐더러 우리 몸에 맞지 않아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오영두 기획부장은 "사용자와 보호자들로부터 '편리하게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뿌듯해 진다"고 말했다.
이지무브(주)는 삼각편대로 운영된다.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가 자본을 대고 운영은 재활 복지 전문가들이 한다. 경기도는 각종 인증 절차 등 행정지원을 도맡았다.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 기업으로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다.
2년여 간 준비했던 탄생이 쉽지는 않았다. 제조업이라는 특성상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지만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과 개인이 없었던 것. 그런데 사정을 들은 현대차가 흔쾌히 이 회사에 3년간 자본금 29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04년부터 장애인용 특수 차량 등을 제작하는 등 현대차의 교통약자 지원 계획(이지무브 프로젝트)과 이 회사 설립 취지가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이 회사의 이름도 이지무브(주)로 지었다.
연구 개발도 지원한다. 실제로 전문적으로 장애인용 차량을 연구개발 하는 현대ㆍ기아차 남양연구소가 수시로 기술자문과 해외 제품에 대한 분석을 돕고 있다. 이지무브(주)의 김근우 경영본부장도 현대ㆍ기아차 남양연구소의 마케팅본부를 거쳤다. 김 본부장은 "장애인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제품을 만들 것"이라며 "6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는 올해 매출이 내년에는 180억원으로 늘어 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회사는 상반기 중 기립이 가능한 전동 휠체어를 생산할 예정이다. 평상시에는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자가 일어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 수입 제품의 가격은 대당 600만원을 넘어 선다. 가격의 8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도 120만원을 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지무브(주)는 이를 300만~350만원에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수출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현대차가 판로 개척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여기에 장애인 차량의 상ㆍ하차 보조기 등도 고급 기술이 필요한 기기도 개발 중이다.
장애인 고용도 확대한다. 현재 4명인 장애인 고용을 올해 안에 30명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내년에는 장애인 80명 등 200명의 고용 창출을 계획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노인과 장애인 복지에 사용하겠다는 원칙도 세워 놓았다.
이지무브(주) 관계자는 "이 회사는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업 형태인 만큼 지속 가능한 경영에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 카페·마사지실… 전시장이 장애인 쉼터
경기 안양시 안양동 이지무브(주) 본사 3층 전시장. 생산 기기를 전시하고 구매 상담을 진행하는 곳이지만 흡사 장애인을 위한 고급 복지 시설처럼 보인다. 이곳을 찾는 장애인들을 위해 마사지실, 카페, 장애아동 놀이방 등을 갖췄기 때문이다.
재활공학 박사 출신의 오도영(45) 대표이사의 발상이다. 그는 2005년부터 경기도 재활공학센터 책임자로 있다가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이지무브(주) 설립을 주도했다. 현재 32명의 직원들과 함께 생산과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오대표는 "준비하는 동안 혼자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모두 포기하고 호떡 장사를 할까'도 생각했었다"며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판로 개척 때문에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고 웃어 보였다.
전시장 한 켠 카페의 메뉴는 모두 1,000원. 카페의 바리스타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정경식(21)씨다. 지적장애 1급이지만 전문 기술을 습득하고 이곳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정씨의 진한 향이 5평 남짓한 방을 가득 채운다. 옆 방의 유영동씨는 전문 마사지사. 시각장애 2급으로 마사지 경력이 10년이 넘는다. 1만원에 이곳을 찾는 장애인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 있다. 유씨는 "마사지를 받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거나 가격이 비싸 엄두도 못 내는 장애인들에게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벌써 입소문이 나 하루 평균 30여명의 장애인이 이곳을 찾는다. 오대표는 "장애인의 마음은 장애인이 가장 잘 안다"며 "단순히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교통 약자 돕는 기업들
국내 자동차 관련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교통 약자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지엠은 소외계층의 이동권 향상을 위한 차량기증 사업을, 르노삼상차는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 교육을 벌이고 있다. 현대모비스도 교통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아이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한국지엠은 한국지엠한마음재단을 통해 2005년부터 차량기증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저소득 소외계층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지난해 35대의 차량을 필요로 하는 복지시설에 기증한 데 더해 지금까지 총 165대를 기증했다.
이동이 불가능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동목욕차량을 만들어 돕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상용 차량 3대를 목욕차량으로 개조해 관련 단체에 기증했다. 좁은 골목에도 어려움 없이 누비는 이 차량 덕에 한해 1,500명 이상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한국지엠의 마이크 아카몬 사장은 여러 차례 사회공헌 활동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한국지엠 관계자는"올해 재단 예산도 12억원 늘었다"며 "저소득 소외계층의 이동성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체들은 교통약자인 어린이 지키기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1만8,000여건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8%를 차지한다. 교통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어린이도 인구 10만명 당 2.3명(200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이에 르노삼성차는 2004년부터 초등학생들의 교통안전을 위해 '안전한 길, 안전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21개 시범초등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지난해에만 전국 6,300여 초등학교에 4만5,000여 개의 교육용 씨디를 배포했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 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이 캠페인 홈페이지는 누적방문자 숫자가 100만명을 넘어 대표적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장 마리 위르띠제 사장은 캠페인과 관련된 모든 행사를 본인이 직접 챙길 정도.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당면한 문제를 새로운 자동차문화를 통해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라며 "앞으로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도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투명우산을 나눠주기 시작해 전국 218개 초등학교에 10만여개의 우산을 기증했다. 우산의 천 부분을 투명한 소재로 바꿔 어린이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해 빗길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생각에서다.
현대모비스는 특히 2003년부터 매년 교통사고 유자녀 중고생 4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모비스의 활동만으로 교통안전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사회적 관심을 넓히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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