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이겨낸 조직력… 이젠 해외로 눈돌려라"
작년도 경영 실적이 공개됐던 올 초 어닝시즌. 은행권에선 신한의 실적에 깜짝 놀랐다. 신한지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으로 거뒀고, 은행도 금융위기 이전 수익을 회복하며 은행권 순익 1위에 오른 것.
평상시였다면 별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우량 은행이었으니까. 하지만 작년 하반기 신한은 라응찬 지주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등 신한을 이끌어 온 세 명의 지도부가 상호 고발과 비방 끝에 한꺼번에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사실상의 지도부 공백상황에서도 신한은 최고의 실적을 냈던 것. 한 시중은행 임원은 "신한 경영진 내분사태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현장에서는 직원들이 연말 업적평가대회를 위해 더 몰입하는 모습은 솔직히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강점이다
신한의 최대 강점은 역시 강한 조직 문화. 이른바 '신한 웨이(Shinhan Way)', '신한 DNA'로 불리는 그 특유의 문화는 ▦조직에 대한 높은 충성도 ▦고객ㆍ영업제일주의 ▦'무한도전'의 마인드로 정리된다. 한 시중은행 전략담당 부행장은 "축구로 비유하자면 신한은행은 브라질 보다는 독일에 가깝다"면서 "개인기는 최고 수준이 아니지만 탄탄한 조직력으로 어느 대회에서나 우승후보로 꼽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의 일사불란함으로 따진다면 신한은 삼성보다도 한 수 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무적으로 보면 리스크 관리능력과 이익 창출 능력이 돋보인다. 시장관계자들도 "적어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신한은행이 리딩뱅크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선제적 리스크 관리는 신한은행의 트레이드마크. 실제로 신한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1년 전부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신규 대출을 중단, 대형손실을 피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신한은행이 창립 이후 두 번의 커다란 위기 속에서도 단 한번의 적자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리스크 관리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관리가 가능한 고객에 집중한 마케팅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표로도 확인되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15.9%), 연체율(0.48%), 고정이하여신 비율(1.31%) 등 모든 건전성 지표에서 신한이 1등을 차지했다.
계열사들도 탄탄하다. 우리나라 금융지주사들은 대부분 너무 은행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게 문제인데, 신한은 카드(신한카드) 증권(신한금융투자) 보험(신한생명) 등 비은행계열사도 아주 탄탄하다. 그만큼 통합금융서비스를 위한 시너지효과도 크다. 심규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과 증권, 보험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1위 카드사와 대형 증권사와 생명사와 연계해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은행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요소다"고 분석했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각각의 요소를 따진다면 별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신한은행이지만, 전체를 보면 웬지 2%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은행전문가들도 신한을 '수익 1등 은행'이라고는 불러도, 명실상부한 '리딩뱅크' 로 칭하지는 않는다.
특히 신한은행은 최근 2년간 전체 자산이 15조원이나 감소했고 국민(3조원) 우리(9조원) 하나(8조원)보다 하락폭이 유난히 커 "성장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금융은 민영화,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농협은행의 새 출범 등 타 은행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신한은 LG카드 인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성장동력발굴에도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준재 센터장은 "신한은행이 성장 모멘텀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해외진출 밖에 답이 없다"며 "조흥은행과 LG카드를 인수했을 때처럼 과감한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에도 개선여지는 있다. 심규선 연구원은 "신한은행이 수익성은 좋지만 국민이나 우리에 비해 고객 수가 적고 고객군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 약점이다"며 "기업금융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외환부문의 비중을 늘려 수익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 경영진 교체로 인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도 과제로 제기됐다. 과거 신한은행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라응찬 전 회장을 정점으로 한 안정된 지배구조의 힘이 컸는데, 언젠가는 그 공백을 체감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한 애널리스트는 "새 경영진이 내부 출신으로 채워진 만큼 경영 일관성은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지금까지 과거 누렸던 'CEO프리미엄'은 상당부분 희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 경쟁은행들은 이렇게 봅니다"탁월한 영업력 갖췄지만 너무 수익성 위주"
경쟁은행들도 신한은행의 '탁월한 영업력'에 대해선 모두 동의했다. A은행 관계자는 "통상 은행들이 전략 지역에서 영업을 하게 되면 해당 지점장이나 직원의 인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한은행은 본사와 영업본부, 지점 등 전문인력이 모두 나서 전방위적으로 영업을 전개한다"며 "타행보다 확실히 조직적인 느낌이다"고 말했다.
실적에 대한 확실한 보상시스템도 부러운 점으로 꼽혔다. B은행 관계자는 "연봉 자체가 은행 최고 수준이라는 점보다 보상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투명하다는 점이 직원 사기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인이다"며 "학연과 지연을 떠나 실적만 좋으면 CEO도 될 수 있는 곳이 신한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신한은 직원 교육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도산 안창호 선생의'주인정신'이라는 글을 기마자세로 2시간 동안 큰소리로 읽는'정독훈련'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모른다는 것. 그러다 보니 여성 신입직원의 경우 눈물을 흘리고 중도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후문. C은행 전략담당 부장은 "대졸 신입직원들이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교육방식을 통해 충성도 높은 직원들로 무장시킨다"며"신한 응집력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D은행 관계자는 "요즘에는 금융기관에 똑똑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데 수백대1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가 너무 힘들어서 나가는 것을 보면 꼭 저런 방식으로 훈련시키는 게 최선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영업 현장에서는 수익성 위주의 영업방식 때문에, 오히려 충성고객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E은행 지점장은 "신한은행이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우량고객은 많을지 몰라도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그에 비례해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F은행 관계자는 "기업들과는 정말 오랜 기간 마음을 터놓는 관계유지가 필수인데 그런 점에서 신한의 기업금융방식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안에선 이렇게 봅니다 "응집력 강해… 경영환경 변화가 기회될 것"
"평범한 사람이 모여 비범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신한은행 경영기획그룹장을 맡고 있는 이상호(사진) 전무는 본보 인터뷰에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업'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다.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체계화된 조직의 힘을 더 중요시하는 게 신한의 문화라는 것이다.
이 전무는 "말단 직원이든 책임자든 최초 기획안을 입안한 사람이 중심이 되고, 토론 과정에서 이를 다듬는 시스템이 어느 은행보다 잘 구축돼 있다"고 강조했다. 타 은행보다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독보적 수익창출 능력을 갖춘 것은 결국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의사결정 시스템 덕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위기일수록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응집력'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지난해 신한 경영진사태 등 큰 '재난'이 닥칠 때 마다 오히려 영업현장에선 더욱 매진하는 특유의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해 초유의 경영진 분쟁사태에도 불구하고, 영업실적은 전혀 악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경영 상황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타 은행들이 일제히 자산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신한은행은 자산증가율을 5%이내로 묶고 대신 우량고객 확보를 통해 체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와 농협은행 출범 등 경영환경 변화에 대해서는 "신한은행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들이 덩치를 키우고 자리를 잡고 시너지를 낼 때까지 적어도 3~5년이 걸리는 만큼 그 틈새를 공략해 고객을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향후 과제에 대해서는 글로벌 금융 역량 강화를 꼽았다. 그는 "해외 현지 은행을 무작정 인수하는 방식보다는 일단 국내에서 글로벌 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은행이 되기 위한 내부역량부터 높여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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