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된 2008년부터 재정 잠식작년 차상위 지원액 7751억… 적자의 60% 차지"취약층 지원 국가 책임을 건보에 전가" 논란 확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 재정적자 가운데 60%가 정부가 국고에서 지원하다가 2008년부터 건강보험으로 떠넘긴 차상위 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가정) 의료지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저소득층의 건강보장 책임을 전가하면서 건보 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지원한 차상위 계층의 의료비는 지난해 7,751억원으로 전년보다 47% 늘었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적자 1조2,994억원 가운데 60%가 차상위 계층 의료비 때문이었던 셈이다.
차상위 계층 중에 희귀ㆍ난치성 질환자, 만성질환자, 18세 미만 아동에 한해 의료비를 지원하는 현행 제도는 2004년 도입됐다. 기초생활수급자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국고에서 지원해왔다. 그러나 2008년부터 건보공단에서 지원하도록 의료급여법 시행령이 개정됐고, 이후 건강보험 재정을 급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현재 지원 대상은 26만명이며, 3년 동안 총 1조4,432억원이 나갔다. 정부도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국고지원액은 공단 지원금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저소득층 의료지원을 사회보험(건보)과 공공부조(국고) 중에 어디서 맡아야 하는지 절대적인 해답은 없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건보에만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보공단 사회보험노조 송상호 정책실장은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저소득층의 건강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의 건강권과 복지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지난해 말 "국가가 보장해야 할 취약계층의 의료부문까지 건강보험에서 부담함으로써 건보 재정의 건전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며 "정부는 차상위 계층의 의료급여 재전환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건강보험 후진국인 미국조차 저소득층 의료지원제도인 '메디케이드'와 노인ㆍ장애인 의료지원제도인 '메디케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재정으로 충당한다. 혜택 대상은 전체 인구의 35%에 이르며, 미국 연방정부 총 예산에서 이들 저소득층 의료지원의 비중이 국방비를 제치고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는 상당수 무상의료 정책이 정착돼 저소득층 의료지원 정책을 따로 펼칠 필요도 없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 들어 4대강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차상위 지원을 건보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이 도입되면서 예산문제로 차상위 계층을 건보로 넘기게 된 것"이라며 "이미 지난 정부인 2007년부터 논의가 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올해 건보의 차상위 계층 지원금은 1조원을 넘어서고, 2013년에는 2조원, 그리고 2015년에는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지원대상도 올해 28만명, 2012년 31만명, 2013년 34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차상위 계층의 의료지원을 포기할 수는 없다. 차상위 의료지원은 국내 복지분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모두 의료지원이 되지만, 수백만명에 이르는 차상위 계층은 일부만 의료지원 대상이 되기 때문에 4명 중 1명이 치료를 포기할 정도(본보 3월9일자 14면)이다. 때문에 차상위 지원확대 요구가 커지는 동시에, 향후 건보 재정 악화에 따른 정부의 책임전가 논란도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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