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동명의 록 뮤지컬을 필름에 옮긴 '록키 호러 픽처쇼'의 시작은 미약했다. 두 젊은 연인과 외계인을 통해 당대의 동성애 문화 등을 뒤죽박죽으로 전달하는 기괴한 내용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록키 호러 픽처쇼'는 그저 그런 영화로 묻힐 운명이었다.
반전은 1976년 이뤄졌다. 심야상영으로 재개봉 하면서 마니아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니아들은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춤과 대사를 따라 하며 '컬트'(Cult)라는 새로운 관람 문화를 만들었다. '록키 호러 픽처쇼'는 지금도 미국 뉴욕 등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세계 최장기 상영작이 됐다. 재개봉과 장기상영으로 운명을 거스른 '록키 호러 픽처쇼'의 성공기는 이 영화의 내용만큼 기기묘묘하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킹스 스피치'는 오스카 효과와 장기상영의 혜택을 톡톡히 본 영화다. 미국 흥행집계기관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킹스 스피치'는 지난해 11월 개봉해 북미 지역에서만 1억3,246만 달러(이하 20일 기준)를 벌어들였다. '아바타'(7억4,976만 달러) 등의 대형 흥행작에 비교하면 뭐 별거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제작비(1,500만달러)를 따져봤을 때 놀라운 흥행수익이다. 오스카 남녀조연상을 싹쓸이한 '파이터'도 닮은 꼴 흥행이다. 지난해 12월 첫 선을 보여 제작비(2,500만달러)의 4배 가까운 9,336만달러의 수익을 북미에서 올리고 있다. 두 영화의 흥행 성공은 할리우드가 단순히 '돈 넣고 돈 먹기' 식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님을 입증한다.
고개를 돌려 충무로를 보면 반가운 흥행과 마주할 수 있다. 노년의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저예산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지난 주말 100만 관객을 넘었다. 20대 초반을 주요 관객층으로 삼는 충무로에서 중ㆍ장년층 대상 영화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이다. 대형 작품들이 개봉하지 않는 전통적 비수기를 맞아 오래 상영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힘의 논리가 어김 없이 적용되는 성수기 시장에 선보였으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개봉과 함께 극장가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관객이 뒤늦게라도 찾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장기상영 체제가 필요한 이유다.
여전히 '대마불사' 전략을 맹신하는 영화사에 던지는 문제 하나. 올해 국내 개봉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작품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가 될 듯하다. 1월20일 개봉해 3만3,543명이 본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5,000명 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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