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연합군의 벵가지 공습으로 북아프리카ㆍ중동의 '재스민혁명'이 다시 한 번 들끓어 오르는 분위기다. 리비아에선 카다피 국가원수가 재차 벼랑 끝으로 밀리게 됐고, 예멘에서는 궁지에 몰린 살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정작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곳은 인구 120여만 명의 중동 도서국가 바레인이다. 국민 다수인 시아파 시위대가 소수 수니파 왕정 타도를 선언, 사실상 종파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 바레인 사태가 악화해 중동 전체의 종파분쟁으로 비화할 경우, 당장 국제 원유 공급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화는 632년 교조 마호메트가 아들 없이 타계하자 승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초기 모슬렘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구분이 없었으므로 후계자 문제는 세속 정권의 문제이기도 했다. 메카의 주류 모슬렘들은 마호메트의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를 1대 칼리프로 선출하며 정통 수니파가 됐다. 반면 메디나의 모슬렘들은 마호메트의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여겨 아부 바크르의 계승에 반대하며 시아파를 형성했다.
■ 교의적으로는 수니파가 마호메트를 최후의 예언자로 보고 코란을 최종적 계시로 삼는 반면, 시아파는 마호메트를 잇는 후계자도 신의 계시를 받아 코란에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피의 역사를 낳았다. 아부 바크르를 이어 3대 우스만까지는 수니파가 칼리프를 대대로 이었으나, 우스만이 암살되고 알리가 끝내 4대 칼리프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알리가 또다시 살해되면서 시아파의 순교자가 되고, 이후 집권한 수니파 무아위아가 왕조를 세우고 아들에게 칼리프를 물려주면서 수니ㆍ시아파는 영원한 분파의 길을 걷게 된다.
■ 전세계 이슬람교도 10억명 가운데 수니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90%다. 하지만 시아파 역시 이란(90%) 이라크(63%) 바레인(70%)은 물론이고, 사우디(10%) 쿠웨이트(25%) 레바논(45%) 등에서도 '정권을 흔들 만한 세력'으로 혼재한다. 최근 사우디가 바레인에 시위진압군을 파견한 것도 페르시아만 건너 이란 시아파의 영향력이 자국의 옆구리에 붙어 있는 바레인을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란 역시 지난 주말 시위대 학살을 비난하며 바레인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개입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바레인 사태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ㆍ이란을 축으로 중동권 전체의 수니ㆍ시아파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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