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년께 청자를 가득 싣고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던 배가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바다 밑 뻘에 묻혀 있던 이 배의 보물들은 1976년 어부가 청자를 건져 올리면서 알려졌다. 그동안 10회 발굴에서 도자기 2만여점을 비롯해 동전 28톤, 길이 29m의 선체 등 무려 2만2,000여점의 유물을 거뒀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도자기 2만여점이었고, 그 중에도 중국 저장(浙江)성 남부 용천 지역에서 만든 청자가 1만4,000여점이다.
오대ㆍ북송 시기인 10세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용천청자는 남송 시기 후반에 이르러 ‘분청’이라 불리는 옥빛 청자를 생산하며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원ㆍ명 대에 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까지 수출돼 중국을 대표하는 청자로 알려졌다. 신안선의 용천청자는 당시 원나라의 주요 수출품으로 일본의 사찰과 귀족들이 많이 찾는 인기 품목이었다. 당시 고려는 독자적 청자를 만들고 있어 청자를 수입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천청자는 그 양과 아름다움, 온전한 형태 면에서 세계적 컬렉션이다. 그 중 90여점을 엄선해 22일부터 6월 19일까지 신안해저문화재실에서 기획전을 한다.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20여점이 포함돼 있다. 용천청자의 독특한 빛깔, 장식 기법, 장식 문양의 다양한 형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쓰임새에 따라 구분해서 전시한다.
옥빛의 은은한 유색을 살리는 데 치중하던 남송 대의 용천청자는 원대에 이르면 녹색이 짙어지고 장식 기법과 문양이 다양해진다. 모란, 연꽃, 한 쌍의 물고기, 용 등을 새기거나 도장 찍듯 박았다. 원나라 때의 독특한 장식기법인 노태첩화(露胎貼花)로 구름과 학을 장식한 접시도 있다. 노태첩화는 틀로 찍어낸 문양을 청자의 몸체에 붙이고 그 부분만 유약을 입히지 않은 채 구워 내는 기법이다. 옥빛 청자 한복판에 붉은 흙빛으로 돋아난 무늬가 근사하다.
신안군 해저에서 건진 용천청자는 접시가 1만여점으로 가장 많고, 대접이 2,000여점, 향로가 200여점이다. 이밖에 주전자 찻잔 등 음식 용기, 항아리와 병 등 저장 용기, 향로와 꽃병 등 장식 용기, 문방구인 연적 등이 있다. 이번 전시는 종류별로 고루 보여 준다.
진열장 하나는 지름이 20~30㎝ 이상 되는 큰 그릇을 따로 모았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원 제국을 지배한 몽골족과 당시 서아시아에서 원으로 모여든 이슬람인들은 큰 그릇에 음식과 스프를 담아 나눠 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큰 그릇을 많이 썼다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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