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 막는 공적자금 족쇄 "민영화로 승부수"
만약 우리은행에게서 공적자금의 족쇄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대다수 은행 전문가들은 우리은행의 위상도, 은행권 판도도 지금과는 꽤 달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의 노하우가 가장 풍부한 은행, 기업금융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은행, 고객 포트폴리오가 가장 잘 짜여진 은행.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한계로 인해 1등으로는 치고 올라갈 수 없는 은행. 한 애널리스트는 "정부소유의 제약 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라며 "결국은 우리은행의 경쟁력도 민영화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강점이다
우리은행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균형 잡힌 고객분포. 통상 시중은행들은 가계 대출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지만 우리은행은 가계(34.3%) 중소기업(43.5%) 대기업(19.2%) 등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분보다 기업부분의 성장세가 강한 지금 같은 경제회복기엔 기업 금융에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우리은행의 성장률이 타 은행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도 "기업대출은 가계대출에 비해 마진율이 높다는 장점과 부실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경기회복기에는 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우리은행의 실적회복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주목할 곳은 수십 년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은행의 대형 기업고객들. 실제로 국내 41개 대기업 가운데 삼성 LG 포스코 등 16곳이 우리은행의 주거래다. 타 시중은행들이 2~4개 정도의 주거래 대기업을 보유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기업 거래는 가계나 중소기업에 비해 관리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우량고객군인 임직원들을 한꺼번에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은행의 가장 확실한 저력"이라고 말했다.
고객군의 충성도도 높은 편. 우리은행의 주고객은 과거 상업ㆍ한일은행 시절부터 거래해 오던 장기고객들로, 웬만해서는 거래은행을 바꾸지 않은 성향을 가졌다. 실제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충성고객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명사클럽(개인 고객) ▦비즈니스클럽(중소기업 CEO) ▦다이아몬드 클럽(대기업 고객) 등으로 분류해 별도 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금융이 자체 민영화를 위해 투자금을 모았을 때 이들 충성고객군으로부터 단숨에 수조원이 모급됐다"면서 "이들은 단순 우량 고객이 아니라 우리은행 주주에 가까울 정도의 충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도 큰 강점이다. 타 은행에 비해 기업고객이 많다 보니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부실기업이 많이 발생했고, 자연히 워크아웃 등 기업구조조정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결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은 경험과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라며 "타 은행 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자문을 구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우리은행의 역량은 독보적이다"고 말했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타 은행이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을 가졌음에도 불구, 우리은행이 1등 은행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공적자금 때문이다. 유상호 연구원은 "우리은행은 현재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매 분기 경영이행약정(MOU)을 맺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며 "장기적 비전을 세울 수 없어 시중은행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주권을 행사하다 보니 현 이팔성 지주회장 이전까지는 CEO도 3년마다 바뀌었다. 잦은 경영진교체는 경영전략이 자주 바뀌고, 결국 단기성과에 치울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민영화 없이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순수 경영요소로는 자산건전성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우리은행의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3.2%. 국민(1.74%) 신한(1.31%) 하나(1.50%) 기업(1.83%) 등 경쟁 은행보다 월등히 높다. 이에 비해 만약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도 업계 최저여서 리스크에 여전히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고객 중 부실 위험이 높은 건설과 조선업의 비중이 타행에 비해 큰 것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경기가 좋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하강으로 접어들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미다.
구용욱 연구원은 "전체 포트폴리오 구성은 좋지만 영업점 수에 비해 가계부문 경쟁력이 약한 것도 흠"이라며 "주고객인 대기업들이 돈을 빌리지 않는 상황에서 수익을 다변화를 위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소매금융의 경쟁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 경쟁은행들은 이렇게 봅니다 "끈끈한 조직력 강점…업무 추진은 소극적"
경쟁은행들이 꼽은 우리은행의 최대 장점도 역시 기업금융 노하우. 단순히 대기업 고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뿐 아니라 구성원들이 대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른바 '관계형 금융'의 장점이다.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우리은행 사람들이 대기업 영업을 할 때 보면 특별히 독특한 상품을 개발하거나 금융혜택을 많이 주는 것은 아닌데도 기업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고 실행해 고객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면 영업에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우리은행이 타행보다 영업활동에 쓸 수 있는 비용이 적다 보니 현장에서 발로 뛰며 고객을 만나는 대면 영업에 강한 측면이 잇다"고 말했다.
높은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맨파워도 장점으로 꼽혔다. 과거 '메이저'은행이었던 상업ㆍ한일은행에 뿌리를 뒀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의 자부심이 높다는 것.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융 위기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임금 수준과 복리후생 등이 많이 낮아졌지만 조직원들의 이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끈끈한 조직력이 강점"고 평가했다.
하지만 역시 대주주가 정부이다 보니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됐다. 경영 상 강하게 치고 나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 또 정부가 임명하는 CEO가 너무 자주 바뀌어 일관성이 없고 조조직 자체가 '바람'을 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과거 상업은행이나 한일은행 시절에 비해 정부가 주인이 된 후 우리은행이 업무추진에 소극적이고, 문화도 다소는 관료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CEO가 자주 바뀌는 것은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는 "과거 CEO시절에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렸던 것이 이번 금융위기에 커다란 부실로 나타났던 것으로 안다"면서 "임기가 짧은 CEO가 단기성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안에선 이렇게 봅니다 "맨파워 앞세워 해외로 영업기반 넓혀갈 것"
"이제 국내에서 경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업계 최고의 맨 파워와 두터운 기업고객을 기반으로 해외로 영업기반을 넓히는 것이 최대 과제입니다."
황록(사진) 우리은행 경영기획본부 부행장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우리은행의 최대 장점으로 ▦글로벌 대기업 고객군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 ▦기업금융 전문가가 어느 은행보다 많다는 점을 꼽았다. 황 부행장은 "삼성과 포스코 등 해외로 뻗는 글로벌 기업들이 많다는 것은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에게는 커다란 기회이자 자산"이라며 "이들 기업들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해외에서도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올해에만 브라질 상파울루, 호주 시드니, 인도 첸나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4곳에 신규 지점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황 부행장은 우리은행만의 차별화된'맨 파워'도 내세웠다. 황 부행장은 "은행이 거래기업과 함께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기업금융과 외환거래에 대한 노하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우리은행 직원들은 적어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다른 은행과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노하우를 접목해 투자은행(IB)업무를 강화한다는 복안도 내놨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0년 이상 쌓아온 기업구조조정 노하우를 활용, 장기적으로 기업 인수ㆍ합병(M&A)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 그는 "아직은 국내 은행권에서 IB업무라는 것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장기적으로 선진은행처럼 부실기업을 싼 값에 사들여 정상화시키고 이를 비싸게 파는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앞으로 보강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프라이빗뱅킹(PB)을 꼽았다. 가계 금융부문에서 보면 경쟁은행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지만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PB부문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지난해 행내 PB사관학교를 개설, 전문PB를 본격 육성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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