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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옥쇄, 카미카제, 주신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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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옥쇄, 카미카제, 주신구라

입력
2011.03.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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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3월 4일 도쿠카와 막부시절 일어난 실화다. 지금은 효고(兵庫) 현인 옛 아카호의 번주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자 47명에 달하는 그의 가신들이 2년 동안 절치부심한 끝에 주군의 원수를 갚은 뒤, 눈 내리는 날을 기해 주군의 무덤가에서 전원 할복 자살한다. 이름하여 ‘주신구라(忠臣藏)’의 전말이다. ‘주신구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기는 광적이다. 지금까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TV드라마 가부키 등이 수천여 편 제작, 상연되었다. 한마디로 ‘주신구라’라는 말만 들어가면 일본인들은 열광한다.

극단적 충성심과 순응

그래서 “꽃은 벚꽃, 사람은 사무라이”라며 일본인들의 화제에 늘 등장하는 것이 ‘주신구라’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취임 직후 도쿄의 센가쿠지(泉岳寺)를 찾아 47인의 사무라이 이름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부르며 분향했다. 그는 주군을 위해 스스로를 버린 행위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들이 주군의 무덤가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써 오히려 전 일본인들의 가슴에 살아있게 됐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와지마에서 온 편지’란 영화가 있다. 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유학파였던 쿠리바야시 중장,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병사 사이고다. 둘의 공통점은 결혼을 했으며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쿠리바야시는 미국에서 자식들에게 손수 미국의 여러 가지 문물을 그림과 함께 재미있는 내용으로 소개하는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줄 정도로 자상한 아버지였다. 사이고는 결혼한지 얼마 안돼 출산을 앞둔 아내를 남겨두고 강제 징집당한 청년이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규모나 장비, 지원 면에서 미군을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고, 공중과 해상 지원도 전무한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이오지마(硫黃島)에 남겨진 일본군에게 주어진 명령은‘최대한 버티라’ 것이다. 유학파인 쿠리바야시 중장은 “최대한 미군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 사람의 목숨도 헛되이 낭비해선 안 된다”며 에둘러 옥쇄를 허락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 절망적인 순간에 할복 자살하면서 부대원들에게도 옥쇄를 명령한다. 물론 중장도 죽는다.

같은 해인 1945년,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은 카미카제 공격을 감행한다.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몰고 미국 군함에 돌진하는 자폭 공격은 무려 1천여 차례 계속되었다. 연합군은 공포에 떨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장군이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은‘옥쇄’‘카미카제’란 말을 사용 금지한 것이었다. ‘주신구라’는 아예 읽지도 보지도 못하게 했다.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충성심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순응했다. 미군 1개 소대가 10만 명을 다스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고, 이는 서양인들을 또 한번 경악하게 한다.

속을 알 수 없는 나라

일본에 지진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다. 수만 명이 사라진 엄청난 사태에서도 NHK 나 국내 방송 화면에서 울부짖는 일본인을 보기는 힘들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조차 드물다. 예전에 뉴욕에서 단 열 시간 정전되었을 당시 강도 약탈로 온통 무법천지가 되었고 LA 폭동은 아비규환, 지옥 그 자체였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지진에도 일본은 조용하다. 2만 5,000명의 사상자와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고베 지진 때도 강력사건 하나 발생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집단사회에 대해서는 의무감이, 개인에 대해서는 보은에 절대적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내고 울기보다는 속으로 오열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세계인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한, 이 기막힌 지진에도 너무나 조용한 나라 일본. 우리가 보기에는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일본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한국인들이 우리 주변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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