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레슬링도 있냐고요? 다들 프로레슬링만 생각하지만 여자 레슬링은 엄연히 올림픽 종목이랍니다." (배미경 선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여자 핸드볼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2008년 12월 창단한 서울 중구청 여자레슬링팀은 제 2의 우생순을 가슴에 품고 달려왔다. 이종호(49)감독과 48~72kg급 선수 7명이 전부인 이 팀은 창단 2년 만에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레슬링 국가대표 4명 중 3명을 배출했고, 각종 국제대회에 대표로 선발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요즘 이들은 훈련에 박차를 가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창단 뒤 첫 올림픽이자 한해 앞으로 다가온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문. 매일 새벽이면 남산에서 계단 오르내리기로 몸을 풀기 시작, 황학동 소형 아파트 숙소에서 훈련장이 있는 충무아트홀까지 오가며 구슬땀을 온 몸에 흠뻑 적신다. 훈련장에서는 보디빌딩, 사이클 등으로 체력을 키우고 기술 훈련과 스파링, 매트 운동으로 실전 감각도 익힌다.
이종호 감독은 "국내에서는 거의 1등 수준의 선수들"이라며 "쿼터제에 따라 아시아선수권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특정 순위 안에 들지 않으면 올림픽에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선수단의 성적은 우수한 편. 63kg급 박상은(23) 선수는 지난해 아시아시니어대회에서 우승한 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72kg급 배미경(27)선수와 55kg급 엄지은(24)선수도 지난해 회장배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표로 발탁됐다. 올 1월 입단한 67kg급 한혜경(24), 59kg급 김경은(19)선수도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팀의 재정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2008년 서울시가 비인기 종목 활성화 차원에서 창단 지원금을 100% 지원했지만, 창단 이듬해인 2009년 2억원, 2010년 1억 4,800만원, 올해 1억 2,500만원 등으로 지원금이 계속 줄어든 것이다. 이 감독은 "지방 여자 레슬링팀은 2~3명이고 우리는 7명이다. 그래선지 우리팀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낮은 편이다. 부족한 부분을 포상금으로 메우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선수들의 자부심만은 인기 종목 못지 않다. 배미경 선수는 "주위에선 '여자 레슬링도 있어?' '링 위에서 연습해?' '어떻게 하는 거야?'라며 궁금해하지만 외국에서는 여자 레슬링 경기를 볼 때 입장권을 사야 할 정도"라고 으쓱해 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창피해서 못 입었던 쫄쫄이 레슬링복이 이제는 가볍고 편해서 마음에 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선수단 막내인 김경은 선수도 "매 순간 힘들어도 경기에서 이겼을 때 보람이 크다"며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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