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주식펀드가 결국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K.O.패당했다. 수익률은 또다시 곤두박질쳤고, 인내심이 다한 투자자들은 서둘러 자금을 빼내고 있다. 올들어 좋은 성적을 내며 권토중래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 펀드가 대지진이라는 강펀치 한 방에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도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11일 이후 국내에 설정된 일본 주식펀드에서는 181억원이 빠져나갔다. 일본주식펀드가 굴리는 자산도 1주일새 2,844억원에서 2,324억원으로 18%나 감소했다. 원전 폭발의 후폭풍으로 방사능 공포에 휩싸인 일본 증시가 하루 10% 넘게 폭락하며 패닉으로 치닫자 탈(脫) 일본펀드 러시가 벌어진 것.
특히 닛케이평균지수가 장중 한때 14% 이상 빠지며 9,000선마저 붕괴된 15일 직후, 이탈은 절정에 달했다. 일본 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프랭클린템플턴 재팬자(A)(주식)’에서는 16일 설정액이 286억원 감소했고, ‘피델리티 재팬자(주식)’도 48억원 줄었다. 국내 투자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금도 7억달러나 일본 펀드에서 대거 이탈했다.
사실 대지진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 증시가 연초 이후 5%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탄 덕분에 일본 펀드도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었다. 2007년 6월 이후 계속 자금이 빠져나가기만 했으나 지난달 93억원이 들어오며 자금 유입 물꼬도 터졌다. 일본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반 토막으로 전락,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준 못난이 펀드의 대명사.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가까스로 플러스 수익률로 반전한 데 이어, 올들어 11일까지 3%대 수익률을 기록하며 해외주식형펀드(-0.72%) 가운데 우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훈풍을 만끽하던 일본펀드 투자자들은 그러나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으며 수익률이 또다시 곤두박질치자 근심에 휩싸였다.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설정된 일본주식펀드는 최근 1주일간(18일 기준) -11.66%라는 막대한 손실을 냈다. 연초 이후 누적 수익률도 -8.97%로, 1주일만에 마이너스로 급선회했다.
이쯤되면 일본 펀드 투자자들은 환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한 증시 전문가는 “현재 일본펀드 보유자는 2006~2007년 호황에 투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손실률이 최대 50%에 달한다”며 “워낙 손실이 크다 보니 환매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3년 수익률이 아직도 -40% 안팎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 펀드의 수익률 회복이 더욱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피해 복구를 위해 일본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 계획이지만 향후 일본 경제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현대증권 김용희 펀드리서치팀장은 “작년 일본의 재정적자가 9.4%에 달했는데 이번 지진 복구 비용 지출로 적자폭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며 “1995년 한신 대지진 때와는 달리 이번엔 재정 투입이 경기부양 정책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해 재건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펀드 전문가들은 “중ㆍ장기로 볼 때 일본 펀드의 청산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며 “일본 펀드를 환매할 생각이라면 방사능 사태가 진정된 뒤 일본 증시가 반등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이철희 연구원은 “자연재해 발생 시 주가 흐름은 대개 2개월간은 하락, 그 이후 3개월간 회복 과정을 거친다”며 “수익률이 회복되면 빠져 나오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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