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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대지진 앞에 반상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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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대지진 앞에 반상도 '흔들'

입력
2011.03.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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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일본 바둑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의 여파로 바둑과 관련된 일본기원의 각종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지진 당일인 11일 오전 10시부터 도쿄 일본기원회관에서 씨에이민 5단과 무카이 치아키 4단의 제 23기 여류명인전 도전 2국이 시작됐으나 오후 들어 기원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고 대국장의 요동이 심해 56수 만에 중단됐다. 일본기원은 15일에 이 바둑을 속개할 예정이었지만 주최사인 산케이신문측과 협의한 결과 아직 바둑 경기를 치를 만한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 다시 연기해 23일 오후 2시부터 재개키로 했다.

일본 바둑계는 전통적으로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일단 예정된 대국 일정을 좀처럼 변경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그래서 과거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도 프로 기사들이 바둑을 끝까지 두었다는 이른바 '원폭 대국'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8월 6일 제3기 본인방전 도전기가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한창 대국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 원자 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대국자 하시모토 우타로 9단과 이와모토 가오루 9단은 순간 뒤로 벌렁 자빠지며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한참 후에 깨어난 이들은 흩어진 바둑돌을 주워 제 위치로 돌려 놓고 대국을 계속했다. 잠시 후 경찰이 들이닥쳐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하자 가까운 교외로 이동해서 대국을 끝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전통을 따르듯 같은 날 벌어진 장쉬 9단과 이야마 유타 9단의 제35기 기성(棋聖)전 도전 7번기 제6국은 지진 발생시각에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결국 끝까지 마쳤다. 대국 장소가 도쿄 서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야마나시현 고후시여서 지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가벼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국 중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입회인 하시모토 유지로 9단이 대국을 잠시 중단시키고 대국자들과 긴급 상의한 결과, 두 선수 모두 계속 두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대국을 재개했다. 장쉬는 이 날 저녁 8시 37분까지 진행된 '지진 대국'에서 승리, 종합전적 4승2패로 기성 타이틀을 방어해 일본 바둑 랭킹 1위를 지켰다.

그러나 이날 오후 3시부터 도쿄 일본기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기성전 도전 6국 공개 해설회는 결국 취소됐다. 일본기원 건물이 계속 흔들거려 위험한 상태인데다 동북부 지방의 처참한 쓰나미 피해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한가롭게 바둑해설을 즐기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 수단들이 대부분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에 공개 해설회를 듣기 위해 기원을 찾았던 바둑 팬들 가운데 상당수가 발이 묶여 기원에서 꼬박 밤을 새고 다음날 오전에 귀가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진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일본기원은 아직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로 일본기원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슈칸 고'도 한 주 휴간했다. 일본기원 홈페이지에 공지된 내용을 보면 14일 제18기 아함동산배 속기오픈전 예선은 예정대로 치렀지만 나머지 대국은 모두 연기되는 등 프로 아마를 불문하고 각종 공식 대국과 바둑 관련 행사가 줄줄이 연기 또는 취소됐다. 18일 뉴오타니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4기 여류기성전 시상식과 축하 파티가 취소됐고 26일 인터넷 대국으로 열리는 장쉬와 다카오 신지의 제4회 다이와증권배 그랜드챔피언전의 공개해설회도 없던 일이 됐다. 19, 20일 개최 예정이던 전(全)일본여류아마바둑선수권전은 4월 이후로 미뤄졌다.

특히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9회 정관장배 세계여자선수권대회와 4월 7일 중국서 개최되는 제1회 황룡사가원배에 일본 선수가 출전할 수 있을 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또 지난 8일 본선 32강전 대진 추첨까지 마친 제24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가 과연 예정대로 다음달 9일 일본기원에서 열릴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후지쯔배는 아직 대회 연기나 취소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예정대로 치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본기원 관계자의 전언이지만 현재 도쿄에 계획정전이 시행중인데다 여진에 대한 불안과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물질 유출 확산 등이 변수로 남아 있다.

대지진의 여파가 일본 스포츠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바둑판도 예외 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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