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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조 없는 교육 수장들

입력
2011.03.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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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힘 빼고 즐겁게 살자는 주의지만, 신명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처럼 청사에 길이 남을 큰 뜻을 세우는 일이야 언감생심일 거다. 하지만 범부에게도 믿는 바에 대한 지조 비슷한 게 아주 없지는 않을 것 아닌가. 방사능 피폭을 무릅쓰고 원자로 냉각작업에 신명을 던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기술자들의 일에 대한 지조는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어디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지조(志操).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라는 뜻을 새삼 새기는 건 '보혁갈등'의 와중에 무원칙과 무소신, 아집이 뒤엉킨 정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우리의 교육수장들 때문이다. 또 그들로 인해 바람 잘 날 없이 돼 버린 교육현실이 답답해서다.

장관도 교육감도 무소신 행태

입시가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난 15일에야 가까스로 확정ㆍ발표된 2012년 대입전형 수정안은 필요에 따라 자신의 교육적 소신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갈지자 행보가 빚은 결과다. 당초 시안이 발표된 건 지난해 12월. 하지만 그걸 확정하는 데 3개월이나 걸리고, 수험생들이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된 건 사교육 의존도를 줄인다며 부랴부랴 각 대학 전형에서 논술 비중을 줄이도록 한 교과부의 관치 탓이다. 이 과정에서 교과부는 논술 비중을 줄이지 않는 대학엔 정부지원금을 삭감하겠다는 '물리력'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이 장관이야말로 장관 취임 전부터 주입식 교육을 탈피해 창의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게 옳다는 정책적 소신을 늘 강조해왔고, 각급 학교의 논술ㆍ서술형 평가를 확대토록 독려했던 장본인이다. 그러던 그가 사교육 억제라는 청와대의 교육 외적 동기에 따른 정책 요구에 부합해 '수치로 확인되는 사교육 억제책'을 내기 위해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한편 이 장관은 자격증을 갖지 않은 교원도 공모를 통해 교장을 할 수 있도록 한 내부형 공모제에 대한 소신도 본질이 아닌 '진보교육감'과의 대립과정에서 슬그머니 접고 말았다. 그는 국회의원이었던 2005년 내부형 공모제 관련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였으나, 이를 통해 전교조 평교사들이 교장이 되고, 한국교총 등의 반발을 사자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진보교육감'의 대표 격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이른바 소신이라는 것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이 장관이 상황에 밀려 지조를 굽히는 식이라면, 곽 교육감은 아예 상황에 따라 멋대로 소신을 갖다 맞추는 화려한 테크닉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일례로 곽 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조치는 학교체벌을 '부도덕한 행위'로 단언하면서, 그런 행위를 막기 위해선 강제조치를 통해 교사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현실화한 것이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최근 교과부의 교원평가 의무화 입법에 대해선 "교원을 대상화해서는 교육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체벌과 관련해서 통제의 대상이었던 교사들이 평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멋대로 소신'인 셈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한 인터뷰에서 학생 인권조례와 관련해 교권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교권보호헌장도 만들어서 교육감 명의로 발표했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조례와 헌장이 상충하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이쯤 되면 그 정치적 활달함이 교육적 소신 정도를 넘어서는 광활한 경지를 보여준다.

희비극이 된 고질적 '보혁갈등'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범인들만큼의 지조도 없고 정책에 신명을 거는 진지함도 없는 교육수장들을 보면 정치적 야심에 영혼이 뜯겨 나간 남루한 초상만이 보일 뿐이다. 그러니 교육 선진화든, 사랑과 인내의 참교육이든 저마다 떠들며 허구한 날 맞붙어봤자 저열함의 챔피언벨트를 차지하기 위한 진흙탕 타이틀매치를 보는 것 같은 느낌밖에 없다. 아이들과 함께 이 꼴불견 싸움판을 지켜봐야 하는 희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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