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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센다이 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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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센다이 총영사관

입력
2011.03.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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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외교통상부가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한 이가 조선의 충숙공 이예(李藝)다. 태조 때 지방 하급관리(아전)이던 그가 조정의 눈에 띈 것은 모시던 군수가 왜구에 붙잡혀가자 포로를 자청, 쫓아가 구해낸 일이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세종조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거의 매년 통신사나 사절로 일본을 오가면서 끈질긴 설득과 교섭력으로 왜구에 끌려간 조선백성 667명을 귀환시켰다. 외교부는 당시 "전문외교관으로서 험지를 마다 않고 국민을 보호한 그의 활동은 지금의 우리 외교관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 앞서 재작년에 처음 선정된 이는 고려의 서희(徐熙)였다. 요(遼)의 침략군에 영토와 백성이 유린된 상왕에서 단신 적장 소손녕과 담판, 실지(失地)회복을 넘어 도리어 강동 6주까지 영토를 넓힌 인물이다. 세계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화 같은 외교성과다. 이런 전설적인 선배 외교관들의 후배들은 현재 어떤가. 허구한 날 들리는 얘기란 것이 온통 낯부끄러운 일들뿐이다. 이권다툼에, 태만에, 권위적 태도에…. 교민사회나 여행자들에게서 좋은 평판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상하이스캔들은 이런 이미지를 굳히는 결정판이었다.

■ 그런데 주(駐) 센다이(仙臺) 총영사관이 우리 외교관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일거에 뒤집었다.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급습 이후 매일 24시간 영사관을 운영하면서 교민 보호에 실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잠시 눈 붙이는 시간을 빼고는 교대도 없이 하루 평균 20시간을 일하면서 교민들을 탈출시키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모자라는 기름과 난방유를 구하려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직접 탈출차량 운전사를 자임하는가 하면 영사 부인들은 끼니마다 밥을 지어 나르고 있다.

■ 여러 나라 공관들이 철수를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키는 게 임무인 기자들마저 방사능 피폭 위험에 대부분 빠져나간 이곳에서 우리 총영사관 직원들은 꿈쩍도 않고 있다. 김정수 총영사 등의 자세는 단호하다. "우리도 두렵다. 그러나 교민 모두가 재해현장을 빠져나가고 안전해질 때까지 여기 남는 게 우리 임무다."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감동의 반응들이 번져가고 있다. 연일 일본인들의 침착한 위기 대응에 대한 칭송에 공연히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뿌듯함으로 다시 크게 펴졌다. 글쎄, 상하이 같은 데만 있는 게 아니라니까.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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