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를 훔쳐 쓰고 있다/레스터 브라운 지음ㆍ이종욱 옮김/도요새 발행ㆍ456쪽ㆍ2만5,000원
현대 문명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 일본 도호쿠(東北)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는 혹시 현대 문명의 본질적 취약성을 보여 주는 징후는 아닐까. 문명의 위기 운운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으로 비칠 수 있지만, 미국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의 최근작인 <우리는 미래를 훔쳐 쓰고 있다> 를 보면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저자는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학제간 연구기관인 지구정책연구소의 소장으로 37년간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해 왔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재의 세계 경제는 다단계 금융사기인 폰지 사기처럼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폰지 경제며, 문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를 신속하게 개조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대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전개되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가 현재 지구촌의 추세를 문명의 위기로까지 진단하는 연결고리는 식량 문제다. 관개 체제의 결함 때문에 곡물 수확량이 줄어들어 소멸한 수메르나 계속된 가뭄으로 망한 마야처럼 모든 문명의 쇠퇴 원인은 식량 감소였는데 지금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2006~2008년 밀 쌀 콩 옥수수의 가격이 약 세 배 올라 사상 최고에 이른 곡물가 상승은 상황의 심각함을 말해 준다.
그 이전 50년 동안 일어난 간헐적 곡물가 상승은 구 소련의 가뭄, 미국 중서부의 열파처럼 특정 사건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2006~2008년의 곡물가 급등은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몇 가지 추세를 반영한다. 인구 증가, 곡물에 기반을 둔 동물성 단백질 소비 증가. 옥수수 등 곡물로 자동차 연료를 만드는 추세 등으로 곡물 소비는 늘고 있는데 비해 토양 침식, 지하수를 마구 퍼 올린 데 따른 대수층 고갈, 지구 온난화와 산악 빙하의 감소 등으로 인해 곡물 공급은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구촌에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각국이 식량수출 제한, 농지 확보 등에 다투어 나서고 빈곤국가는 파탄 지경에 빠져들어 그 정치, 사회적 여파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국내 식품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2007년부터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최근 곡물 수입국인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 데는 이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이 원인의 하나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이 마다가스카르에 대규모 농지를 취득하자 정권이 교체될 정도로 소동이 벌어졌다든가, 중국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이 나라의 주식인 옥수수 재배 면적 190만헥타르보다 훨씬 넓은 280만헥타르의 토지 이용권을 확보해 야자유 생산에 나선 사례 등이 제시된다.
저자는 현재의 세계 경제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1950년대에는 자연계가 지탱할 수 있는 산출량만을 소비했지만 경제 규모가 두 배, 네 배, 여덟 배로 커짐에 따라 자산 기반 자체가 소모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80년께 인류의 집합적 수요가 지구의 지속 가능한 산출 용량을 처음으로 초과했다고 한 미국 국립과학원의 2002년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2009년 현재는 30%가량 초과한 상태라고 밝혔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훔쳐 현재에 팔고 있으며 그것을 국내총생산(GDP)라고 부른다"는 <축복받은 불안> 의 저자 폴 호켄의 말대로 라는 것이다. 축복받은>
저자는 이 같은 현재의 추세를 A라고 할 때 식량 안전이 회복되고 문명이 유지될 수 있는 길로 세계의 진로를 선회하게 하는 계획을 플랜B라고 부른다. 전지구적 규모의 변화를 촉구하는 플랜B의 구성요소는 네 가지다.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 줄이는 것, 세계 인구를 80억명 이하로 안정시키는 것, 빈곤 퇴치, 자연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이 4가지 방향으로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구체적 동향을 자세하게 제시한다. 이 가운데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계획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에 의존한 경제에서 풍력 태양 지열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저자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으며, 플랜B 에너지 경제의 핵심은 풍력발전이라고 강조한다. 2020년까지 5,300gW(기가와트)의 재생가능한 전력을 새로 개발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풍력발전에서 얻으면 현재 전력 생산에 사용되는 석탄과 석유 전체, 그리고 천연가스의 70%를 대체할 수 있어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문명을 구하기 위한 4가지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며, 문제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속도라고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산업계를 몇 달 만에 전시경제체제로 개조한 것처럼 자연계가 견딜 수 있는 티핑포인트에 다다르기 전에 빨리 세계 경제를 개조해야 하며 지금이 결심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비현실적인 주장이나,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각국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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