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거리를 거닐다 버려진 물건들을 기웃거리는 젊은이를 본다면 그 사람은 박길종(29)씨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재활용품 수집 할머니의 경쟁자'라고 일컫는 박씨는 지난해 여름 이태원에 작업실을 열고 폐품들을 쓸모 있는 작품으로 변신시켜 파는 온라인 매장 길종상가를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이태원 주변은 다른 동네에 비해 오래된 물건이나 외국인들이 쓰던 물건이 많아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며 "앤티크 가구 거리도 있어 버려진 가구 중 쓸모 있는 것들을 찾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집한 폐품을 작업실에 두고 새로운 기능으로 바꾸는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이런 영감에 의해 3시 5분 전을 가리키며 멈춰서 있던 시계가 의자로 재탄생했다. 또 전자계산기에 밀려 주택가 골목길에 버려졌던 주판은 필통 뚜껑으로 변신했고, 거리를 질주하던 스케이트 보드는 움직이는 조명 받침대로 바뀌었다. 그의 홈페이지(http://bellroad.1px.kr)에서 작품의 탄생과정을 볼 수 있다.
박씨를 비롯해 이태원에 사는 9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이태원 주민일기'를 발간했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이태원 이웃과 나누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한남동의 부촌과 재개발을 앞둔 주택가가 맞닿아 있고, 이국적인 문화와 토박이들의 생활이 공존하는 이태원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윈도우 페인터 나난씨는 이태원을 산택하며 길가의 풀에 화분을 만들어 주었고, 사진작가 장진우씨는 신청자의 집에 찾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움직이는 식당'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홍민철씨는 이태원 편의점 앞에서 만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코스를 돌아봤다. 사진작가 사이이다씨는 재개발로 사라질 예정인 이태원의 집을 스튜디오로 바꿔 초상화를 찍었다. 국악을 전공한 황애리씨는 자신의 집과 공원에서 주민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쳐 국립극장에서 발표회를 열었다.
책을 기획한 사이이다씨는 "이태원에 6년 넘게 살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국적 관광명소와는 다른 점을 느끼게 됐다"며 "30년 넘게 한곳에서 산 분들도 많고 요즘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이태원은 다양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18일 오후 7시30분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아트홀에서 '이태원 주민일기'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주제로 3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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