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전국 여자 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 48kg급 결승전이 열린 경북 안동실내체육관.
배우 이시영(29)이 헤드기어를 눌러쓰고 링에 올랐다. 이 체급 최고령 출전자인 이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증명하듯 10대 선수들을 차례차례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올라왔다.
기선제압을 위한 잠깐의 눈싸움. 상대는 이 대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 성소미(16ㆍ전남 순천 청암고 1학년)였다. 국가대표를 지내고 지금은 전남복싱연맹 훈련이사를 맡고 있는 성광배 관장의 딸이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수영 금메달리스트 정다래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복싱선수 성동현의 친동생이다. 여배우 복서와 복싱가족의 피를 물려받은 복싱 유망주와의 4라운드 대결.
1라운드 초반 탐색전을 벌이던 이시영은 긴 팔을 이용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왼손잡이인 그는 정확한 스트레이트를 성소미의 얼굴을 향해 날리며 9대0으로 앞선 가운데 1라운드를 마쳤다. 2라운드는 난타전이었다. 성소미가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저돌적인 공격에 나서면서 잠시 얼굴에 양훅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이시영은 당황하지 않고 받아 쳤다. 2회 중반 이시영이 날린 왼쪽 스트레이트가 성소미의 얼굴을 정확히 가격하며 스탠딩 다운을 얻었고, 3회전에서도 연이은 펀치로 2번째 다운을 얻어냈다. 이씨는 3회 1분40초 만에 RSC승을 얻었다. 두 선수의 점수 차가 15점 이상 벌어지면 심판이 RSC를 선언하게 된다. 이날 점수 차는 17대0이었다.
심판이 이시영의 손을 높이 쳐들자 그는 그제서야 활짝 웃는 얼굴로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은 이시영은 감격의 눈물을 보이며 자신과 싸웠던 어린 선수들을 안아주기도 했다. 그는 시상식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승리를 예상 못했는데 우승하게 돼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시영의 권투 스승인 ‘4전5기’의 신화 홍수환 스타복싱체육관 관장은 “이시영은 16일 준결승 시합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가서 방송촬영을 하고 새벽에 다시 내려왔다”며 “체력과 정신력 모두 대단히 강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시영은 지난해 초 드라마 배역을 위해 복싱을 배우게 되면서 홍 관장과 인연을 맺게 됐다.
홍 관장은 “이시영은 복싱을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전국체전은 물론 런던 올림픽도 준비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씨는 언제까지 복싱을 계속 할거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확답을 피한 채 “앞으로 영화도 복싱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시영은 현재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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