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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일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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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일본을 응원합니다

입력
2011.03.1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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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나기 이틀 전에 일본의 아오모리(靑森)에 있었다. 문학행사와 여행을 겸한 길이었다. 사과로 유명한 그 고장은 어디에나 사과밭이었는데, 이제 첫 잎이 열릴 시기라고 했다. 가지치기를 끝낸 사과나무들이 아직 눈 쌓인 벌판에서 제 몸의 힘을 다 하여 서있었다.

재앙의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있었다고 한들, 여행자로서 느낄 수는 없었을 터이다. 돌아와 고작 이틀 만에 대지진의 소식을 듣고, 그 평화롭고 아름답던 풍경이 꿈 같았다.

재앙 속에 돋보인 용기

꿈같이 떠오르는 풍경에 기억나는 것이 어찌 사과나무뿐이겠는가. 묵었던 호텔에서 떠날 때 투숙객들을 향해 손 흔들어주던 호텔 직원들의 시린 손, 그리고 코끝이 빨개져 있던 추운 날의 미소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추운 날, 저렇게 애써 손 흔들어주지 않아도 좋을 터인데, 과연 일본사람들이다 여겼던 내 잠깐 동안의 생각도 떠오른다.

지난 해 말에도 일본에 갈 일이 있었다. 택시 안에서 우리나라의 일기예보처럼 지진 상보를 방송하는 라디오를 들었다. 택시를 같이 탔던 일본사람들이 주의 깊게 라디오 소리를 경청했다. 그런 방송이 상시로 나온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지만 지진이 잦은 나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그때도 여행자였던 나는 다만 여행자의 시선을 갖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바람만 불어도 내 집 문 앞까지 닿는 가까운 나라여서가 아니라, 일본이어서도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사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니, 또한 내 일이고 우리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만 열면 일본 대지진 소식이 가득 뜨는데 마음이 황황하고 두려워 차마 클릭을 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보고, 느끼고, 자세히 알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지진이란 게, 자연의 재앙이란 게, 도무지 속수무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에 분노를 하고 어디에 호소를 해야 하나. 또 어디에다가 참담한 서글픔을 말해야 하나.

그나마 위로를 주는 것은 재앙의 당사자인 일본인들이다. 그들이 놀랍게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위기에 대처한다는 보도를 볼 때마다, 위로 받을 길 없던 마음이 간신히 안심된다. 한 사람이 지키는 질서와 한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유지하는 침착함이 아마도 모든 사람을 구하는 힘일 터이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물을 나르는 소년의 사진, 불법인줄 알지만 자신의 핸드폰으로 TV 뉴스를 촬영해 방송이 끊긴 지역으로 소식을 날랐다는 중학생에 관한 기사, 그리고 100 시간이 넘게 잠을 자지 못해 수척하게 모습이 달라진 관방장관의 모습... 그 장관을 향해 네티즌들이‘제발 잠 좀 자라’고 성원했다는 기사, 그런 것들이 끊이지 않는 여진과 원전 폭발의 위험으로 가득 찬 기사들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일본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믿는 게 아니라, 어떤 재난과 재앙 속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용기와 선의를 믿고 싶은 것이고, 그게 또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내 목소리 멀리 가 닿기를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이 지면에 무엇을 다 말할 수 있으랴. 할 수만 있다면, 이번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마는, 내 목소리 따위가 어디에 가서 닿겠는가마는 그래도 오, 하나님을 외쳐 부르는 것보다는 그러는 쪽이 그나마 낫다 싶어서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행히도, 나는 그들 중의 누구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멀리 바라보며 응원할 뿐이다. 그것이 그저,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 중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겠다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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