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이익을 지키느라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재앙과 관련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일본 정부가 “원전시설이 지진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IAEA의 경고를 가볍게 여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철저한 내진설계, 오랜 원전 건설의 노하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오만’이 화를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프랑스와 함께 원자력발전설비 세계 3대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안전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이래저래 IAEA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막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영 일간 가디언은 15일(현지시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당시 현장 정화 업무를 맡았던 현 오스트리아 환경부 원자력 안전고문 루리 안드레프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IAEA가 일본 방사능 유출 사태를 계기로 비난의 포화를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안드레프는 “IAEA와 사고 연관 기업들은 유착관계와 이익을 이유로 체르노빌 사고의 교훈을 무시해왔다”며 “체르노빌 이후 이들은 명성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해 사고의 본질을 숨기고 사례 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IAEA가 기업들과의 유착을 떨치고 체르노빌의 ‘교훈’을 제대로 연구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해왔다면 후쿠시마 사태를 초기에 제어할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안드레프는 또한 “일본 정부가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공간활용을 한다는 이유로 폐연료봉을 수조에 너무 빽빽하게 보관하고 저장소와 원자로를 지나치게 가깝게 배치한 것도 화를 키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또한 2009년 IAEA의 사령탑에 오른 일본인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弥) 현 사무총장이 모국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의심의 눈길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2009년 일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IAEA의 수장에 오른 아마노 사무총장이 벌써부터 후쿠시마 사태 정보를 늑장 공개해 곳곳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15일 영 일간 텔레그래프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전문을 인용해 2008년 12월 IAEA가 “일본 원자력발전소들의 안전기준이 낙후해 강진을 견딜 수 없다”고 일본 정부에 경고한 사실을 보도했다.
신문은 “외교전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정부가 안전기준을 강화할 것이라 약속했지만 현재 과연 얼마나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며 사실상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했을 것이라 지적했다. 일례로 텔레그래프는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이 IAEA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과 규모 7.0의 지진에 견딜 정도의 내진설계만 갖췄다는 점을 들었다. 일본 정부가 IAEA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이후 내진설계를 강화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문은 “2006년 3월 외교전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강진에 취약한 서부지방의 원전을 폐쇄하라는 법원의 결정에 반대한 사실이 있다”며 일본 정부의 원전 안전불감증이 지속되어 왔음을 질타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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