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위력의 방사선 앞에 완벽한 '특수 방호복' 같은 건 없습니다. 그 상황을 알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직원은 16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 남은 직원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바란다"며 이 같이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끝까지 원전에 남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1호기 원자로에서 첫 폭발이 발생했을 때 제1원전에 남았던 800여명 가운데 15일 2호기 폭발 이후 대부분이 긴급 철수했고, 약 70명이 남아 교대로 작업을 하고 있다. 상당수는 고참급 자원자들이라고 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맞서는 '얼굴 없는' 작업자들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핵연료봉을 식히고 방사성 물질의 추가 대량 유출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던 '영웅'들마저 16일 오전 일시 철수해야만 했다. 방사선량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안에선 어떤 상황이 전개됐던 것일까.
이들은 정전으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원자로에서 새나오는 수소 가스가 때때로 일으키는 폭발이 거의 유일한 외부 조명인 원전 내부를, 헤드램프에 의지해 이동하며 복구 작업을 해 왔다.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에 따르면 지진 이후 원전 노동자 5명이 숨졌고, 22명이 부상했다. 2명은 실종됐다. 몇몇 직원은 과다한 방사선에 노출돼 쓰러졌다.
원전이라면 방사선 차폐 장비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은 반쯤만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TV에서 볼 수 있는 하얀색 전신 방호복은 일반적인 작업복에 불과하다고 한수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물론 위험한 작업 상황에서는 납이 들어간 특수 방호장구가 동원된다. 납으로 표면을 처리한 고글, 납 조끼, 납 장갑 등과 함께 산소마스크도 착용한다. 납은 두께에 따라 가장 강력한 감마선까지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신을 납으로 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 방사선 방호장구 업체 관계자는 "납 전신복은 없다"며 "그렇게 입고서는 움직임이 매우 제한돼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납 조끼 무게만 약 10㎏이고 산소통까지 포함하면 장비 무게는 약 20~30㎏에 이른다.
결국 이들이 방호장구를 모두 착용했다 해도 일정 수준의 방사선 피폭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위험 구역 내 작업 시간을 배분해 개인 당 피폭량을 제한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작업 효율성을 고려한 듯 15일 이들에 대한 방사선 피폭 허용치를 100밀리시버트(mSv)에서 250mSv로 상향했다. 이는 미국의 원전 노동자 허용치의 5배라고 NYT는 보도했다.
원전 복구 작업이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게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미 조지아대 참 달라스 교수는 CBS와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통제실에서 일하는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소개하며 "친구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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