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상황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12일의 1호기 배출 수소 폭발 때만 해도 냉각시스템 가동에 쓰이는 비상전원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예외적 사건 정도로 생각됐다. 하지만 어제 4호기에 두 번째 화재가 발생한 것을 포함해 1~4호기 모두에서 폭발이나 연료봉 노출 등의 사고가 발생하고, 5, 6호기 냉각시스템에도 이상이 나타나는 등 사실상 제1원전 전체가 재난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총체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를 되짚어 보면, 안전시스템을 구축할 때 그나마 최악으로 설정한 재난 시나리오조차 결국 실제 상황을 따라잡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1~3호기 사고는 모두 지진에 따라 원자로 전원이 자동 차단된 후 별도의 원자로 냉각펌프 구동용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못해 비롯됐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비상발전기가 디젤이나 비상배터리, 또는 다른 발전기에서 끌어오는 전기로도 가동될 수 있도록 다단계 가동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지진 후의 쓰나미를 예상하지 못하는 바람에 모두 물에 잠기며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이다.
원자로 냉각이 실패하면 원자로심이 과열되고, 이로 인해 수소 증기 등이 발생해 격납용기 압력이 급상승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비상 시 냉각실패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에 격납용기 내 수소를 제어하거나, 방사성 증기를 안전하게 배출하는 장치 역시 미비했다. 이는 1호기와 3호기 수소 폭발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15일 폭발한 4호기는 점검을 하기 위해 지진 전에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상태여서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폐연료봉 보관 수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더욱 나쁜 건 애초에 폐연료봉 수조의 폭발 가능성이 설계에 반영되지 않아 격납용기 같은 방사성 물질 차단구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4호기 사고는 방사성 물질 확산 우려가 가장 큰 상황이 됐다.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 1호기 폭발 직후 국내 원전의 안전성도 전면 재점검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맞춰 정부는 13, 14일 이틀동안 전국 21개 원전에 대한 안전점검을 벌였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분석이 나오면 원전 안전에 대해 원점부터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볼 때, 아무리 안전성을 재검토해도 비상사태에 관한 통념 자체를 바꾸고 재난 시나리오의 등급을 높이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이기 십상이다. 한 차원 높은 안전기준에 도달한다는 각오로 모든 가능성을 반영한 재난 시나리오를 세우자. 그리고 거기에 맞춰 안전 및 비상사태의 기준부터 재정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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