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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야시마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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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야시마 작전

입력
2011.03.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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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 사이에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듣고 있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에반게리온'은 10여년 전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복음(evangel)'이라는 단어의 제목이 암시하듯 세기말적 분위기와 지구의 대재앙, 외계에서 온 듯한 정체불명 괴물의 공격, 이에 맞서는 인간의 사투 등이 전반적 흐름이다. 최신판에서 주인공들은 생체로봇 에반게리온을 이용해 '야시마(ヤシマ) 작전'으로 악의 사도를 물리치고 있다. 유일한 대책이 고출력 레이저 총이라고 판단, 마을들을 스스로 정전시키고 그 전기를 모아 무기를 충전한다는 내용이다.

■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참상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야시마 작전'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일반 발전소도 상당부분 가동이 중단되면서 전기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꼭 필요한 곳이 우선적으로 전기를 쓰도록 '스스로 정전을 하자'는 시민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쓰나미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위해 자기 주변의 불요불급한 전기제품의 콘센트를 스스로 뽑자는 내용으로, 세세한 행동강령도 있다. 처음엔 트위터 등 SNS나 문자메시지로 시작됐다는데, 정부가 이를 수용해 국가적인 '작전'으로 승인하고 추가 시책도 발표했다.

■ 작전 이름은 '야시마(屋島) 전투(1185.3.24)'에서 유래했다. 수많은 전투 가운데 신화처럼 일본인에게 회자되는 이 전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특이한 전략으로 적을 물리친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고대왕조 헤이안(平安)시대가 막을 내리고 쇼군 중심의 바쿠후(幕府)시대를 연 계기가 됐다. 최고의 무사였던 요시쓰네(義經ㆍ1159~1189)가 왕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과 건곤일척을 다퉜던 해전이다. 군사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조류를 활용하고 적선의 기동력을 집중 공격해 대승을 거뒀다. 그는 지금도 일본의 영웅 가운데 하나로 인기가 높다.

■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나 울돌목전투와 같이 일본인들은 남녀노소 모두가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야시마 작전'이라는 한마디에 일본열도 전체가 쉽게 공감할 수 있었을 터이다. 주목되는 점은 일본 정부가 SNS 속의 움직임을 포착해 이를 곧바로 활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초딩ㆍ중딩ㆍ고딩들'이 열광하고 있는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국가정책으로 흔쾌히 수용하는 유연성도 눈에 띄었다. 엄청난 참사를 겪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누구와도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고, 무엇이라도 공감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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