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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핵 재앙과 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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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핵 재앙과 투명성

입력
2011.03.1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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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측은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원전 폭발에 따른 방사능 대량 누출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일본이 외부에 아무 것도 숨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물론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면서다. 언뜻 들으면 재앙을 당한 나라가 어떠한 도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러시아가 25년 전인 1986년 구 소련시절에 20세기 최악의 핵 참사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사건'을 은폐하려 했었다. 이번에 일본에 숨기지 말라고 한 것은 제 발이 저려서 그런 것이었을까. 소련은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로 처참하게 파괴돼 방사성 물질이 산지사방으로 퍼져가고 있는데도 입을 꾹 다물었다. 도움을 받고 안받고는 러시아의 자유겠지만 조기에 대처할 기회를 놓쳐버린 이웃나라들에게 러시아의 은폐는 사실상의 '테러행위'였다. 체르노빌 사고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주변 나라들이 자국 대기에서 평소 발견할 수 없었던 방사성 물질을 검출, 구 소련에 해명을 요구한 끝에 겨우 실토를 받아낼 수 있었다.

용서는 할 수 없겠지만 소련은 공산주의 폐쇄체제여서 그랬다고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의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 원전 상황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충격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당초 일본의 원전 위기상황에 대해 줄곧 방사성 물질의 대량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해왔었다. 그러다 15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2호기에서의 폭발로 최후의 보루인 격납용기가 손상됐을 것이라는 징후들이 나타나자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말을 바꿨다. 정보공개가 미흡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원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이 자신에게도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외국이나 국제기구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적으로도 무엇인가 숨기려 한 정황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엄청난 재앙의 와중에서도 '투명하지 못한'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원전 운영회사와 IAEA간 유착관계를 지적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주장의 요지는 IAEA와 기업들이 업계의 성장이라는 상업적 이익에 휘둘려 치명적 사고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일본 원전위기 확산의 배경에 이런 유착관계가 작용했다면 국제사회는 이 엄청난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사활적 노력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이는 어떠한 명분도 없이 오로지 돈만을 위해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사고파는 행위보다도 나쁘면 나빴지 나을 것이 없다. 핵은 설사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평생 감당하기 어려운 상흔을 지고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이번에 일본이 겪은 엄청난 아픔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훈은 평화적 핵 이용을 앞세워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북한에게도 똑같이 미쳤으면 한다.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도 언제 어떻게 재앙으로 변할 지 모르는 마당에 '불순한 의도의 핵'만큼은 우리 한반도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으로 순진한 얘기일지 몰라도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선(善)이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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