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공화당 잠룡 4인 대선 기지개…'출사표 언제 던질까' 저울질
2012년 미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맞설 공화당 주자는 누구일까. 선거를 1년 8개월 정도 앞두고 공화당에서는 대권의 꿈을 품은 잠룡들의 물밑 각축전이 치열하다. 유력주자 중 공식적으로 출마를 밝힌 사람은 아직 없다. 잠재 후보들이 많다 보니 '먼저 나서봐야 뭇매만 받는다'는 생각에 상대방의 동향을 살펴가며 출마에 유리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판세의 열쇠를 쥔 핵심 지역구를 순방하거나 자서전 출판기념회, 대중연설, 선거자금 지원 모금행사 등을 통해 유권자들과의 접촉의 면을 넓혀나가는 방식으로 선거전은 이미 후끈 달아있다. 미국을 떠나 중동의 미군기지를 방문하고, 지도자들과 면담하는 등 '준비된 세계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후보 선언도 하지 않은 주자가 국내 유권자들을 넘어 외교ㆍ안보 현안까지 챙기는 것은 과거에는 보기 힘든 일이다.
중간선거 압승 후 낙관 분위기 신중론으로 바뀌어
내년 대선을 보는 공화당의 분위기는 '신중 혹은 불안'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에 압승을 거둔 직후 정권탈환이 목전에 온 것처럼 흥분했던 때와는 딴판이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의회가 시작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진보에서 실용적 중도노선으로 변신하면서 이런 기류는 "지금 대통령은 지난해 보았던 대통령이 아니다. 이기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핵심참모이자 선거전략가로 이름을 날린 칼 로브는 "차이가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더 승산을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잠룡들에게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모르고 오바마 대통령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오바마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출마를 포기한 후보까지 나왔다. 존 순 상원의원(사우스 다코타)은 오바마 대통령을 "매우 명민한 정치인"이라며 "현직 대통령을 이기기는 힘들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직전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현직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서 바로 패한 경우는 1896년 이래 딱 한번 있었다. 1976년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에 올랐다 4년 뒤인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정권을 내준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유일하다.
중간선거 때에 비해 민주당에 우호적인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공화당의 우려를 더해준다. 톰 콜 공화당 하원의원은 "더 젊어지고, 피부색은 갈색이며 이념은 진보"라는 말로 달라진 유권자 성향을 분석했다. 공화당이 히스패닉 계층에서 민주당에 30% 가까운 대패를 당했던 지난 대선 상황이 재현되면 대선 승패의 핵심인 플로리다는 물론, 콜로라도 뉴멕시코 네바다 애리조나 등 중서부에서 공화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공화당 주자들이 출마 선언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 대선 때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2006년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후보 선언을 하고 선거캠프를 가동한 뒤 그 해 12월 가장 먼저 경선이 치러지는 뉴햄프셔를 방문했다.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 시작한 1972년 이후 지금처럼 뚜렷한 선두주자 없이 많은 후보들이 이전투구를 보이는 것은 40년만에 처음이다.
초반 허커비, 롬니 양강구도로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공화당 후보 중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인물은 10명 정도이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존 헌츠먼 전 주중대사, 론 폴 하원의원, 헤일리 바버 미시시피 주지사, 미치 대니얼스 인디애나 주지사 등이다. 이중 롬니, 허커비, 페일린, 깅리치가 '빅4'를 형성하며 선거자금 모금과 공약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와 피자 체인점 사장 출신의 티파티 대변인인 허먼 케인도 경제계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정책여론조사(PPP)가 10~13일 실시한 가상대결에서 허커비는 19.7%로 롬니(18.9%)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고, 페일린(15.9%), 깅리치(10.4%)도 10%대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주목할 것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롬니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지켰으나, 올해 들어 허커비가 추월,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몬 신자라는 롬니의 종교적 한계에다 보수색이 옅다는 것까지 지적되면서 보수성향이 강한 목사 출신의 허커비에게로 공화당 유권자들이 돌아선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롬니가 선거자금면에서 허커비에 크게 앞서 있고, 본선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어 당분간 롬니와 허커비가 빅4 중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 오바마 진영, 일찌감치 재선모드 돌입 '순풍'
공화당이 후보들이 난립하며 ‘교통정리’가 늦어지는 사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찌감치 선거캠프를 차리고 재선무대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지지도가 급락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후보 지명을 위한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화당 잠재후보들과의 1대1 가상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는 강력한 후보로 부상해 있다. 당내 제1의 도전자로 거론됐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은 오바마 재선 선거체제로 전환됐다.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새 의회 출범과 함께 야당과의 ‘상생정치’를 표방한 이후 40%대에 머물던 지지도가 50%대 가까이로 높아지면서 민주당은 한껏 고무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초반전략은 ‘선거캠프 조기가동에 이은 접전지역 선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화당 잠재 후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출마선언을 미루는 것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공화당에서는 출마선언 지연이 경선 장기화로 이어지고, 이런 소모적인 당내 경쟁이 오바마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재선캠프를 차리기로 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캠프를 공식 가동할 계획이다. 캠프를 이끌 참모들의 진용도 속속 갖춰졌다. 최근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백악관 부비서실장직을 사임한 짐 메시나가 재선팀을 이끌고, 4년 전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도 백악관 선임고문직을 끝내고 시카고로 복귀했다. 1월 백악관 대변인에서 물러난 로버트 기브스도 조만간 시카고로 합류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새 의회 출범과 함께 실용적, 친기업적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급격히 중도로 변신하는 것은 재선 전략과 밀접히 닿아있다. 월가 출신인 윌리엄 데일리 JP 모건 체이스 지역담당 회장을 비서실장으로 영입하고,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으로 임명,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살리기’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최근 주중대사로 자리를 옮긴 게리 로크 상무장관 후임에도 재계 최고경영자(CEO)가 거론된다. 중간선거 참패 뒤의 의회 레임덕 세션에서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연장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월 정부규제 전면 재검토를 밝히는 행정명령을 백악관이 “언론도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던 보수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공개한 것은 상징적이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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