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호텔이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방사성 물질 누출을 우려한 재일 외국인들이 일본을 빠져나오면서 임시 피난처로 한국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국내 여행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17일 자국 공군 소속 에어버스 2대를 동원, 교민과 기업인 등 자국민 240여명을 서울 중구 그랜드앰배서더호텔로 대피시켰다. 이들은 방사능 검사를 받은 뒤 이 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체 객실 411개 가운데 120개를 프랑스인이 차지하고 있다. 18일 새벽 이들을 맞은 호텔 측은 뷔페식당을 비상근무시켜 식사를 제공했다. 비용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관계자는 "일단 19일 퇴실할 예정이지만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일본 사태의 추이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호텔에는 18일에도 일본행 호주 에어라인 소속 승무원 20여명이 투숙 문의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손님을 내려 주고 승무원들은 한국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소공동 롯데호텔에도 한국 주재 각국 대사관 및 영사관 등을 통해 투숙 문의가 밀려들고 있다. 일본 주재원들과 기업인들을 당장 본국으로 철수시키기엔 부담이 있어 우선 한국에 머물게 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호텔 관계자는 "몇몇 유럽계 기업과 해당 국가 대사관 등에서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이 몇 주일 동안 묵을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러시아 프랑스 호주 등 세계 각국이 전세기 등을 동원해 일본에 체류하는 자국민 소개에 나선 데 비해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로서 정부 차원의 교민 철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원전 주변 반경 80㎞ 이내에 있는 국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권고한 상태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방사능 피해 확산에 대한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공식 이유지만, 지나치게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교포 1명은 온천에서 유가타 차림으로 일하다 쓰나미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아 90㎞를 걸어 대피소로 피했다고 한다"며 "왜 한국 정부는 자국민 철수를 말하지 못하는가"라고 비판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는 '대사관의 귀국 권고 조치가 없어 현지 직장과 학교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남아있다'는 글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원전의 방사성 물질 누출 등에 따라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군용기와 해경 경비함을 투입해 교민 철수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무부는 이날 일본에 체류하던 외국인이 한국을 경유해 귀국할 경우 긴급여행증 소지자의 입국을 허용키로 했다. 또 이들이 임시로 국내 거주할 의사가 있으면 일시 체류도 허용할 방침이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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