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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호쿠 대지진/ 센다이 교민 80여명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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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호쿠 대지진/ 센다이 교민 80여명 귀국

입력
2011.03.1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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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 3시간 걸렸던 길이 돌아올 때는 나흘이나 걸렸습니다." "고국 땅을 살아생전엔 못 밟을 줄 알았어요." "혼자 먼저 와서 미안합니다."

일본 도후쿠(東北)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거주하는 교민 80여명이 15일 모국 땅을 밟았다. 악화일로를 치닫는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에 센다이 탈출을 감행, 이날 오전 니가타 발 대한항공 KE764편에 몸을 실어 낮 12시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익숙했던 센다이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 대지진과 쓰나미에 큰 충격을 받았던 상당수 교민들은 공항 1층 입국장에서 마중 나온 가족, 친지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등 흔치 않은 광경이 연출됐다.

이들의 센다이 탈출기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부인, 아들 둘과 함께 센다이에서 2년째 체류하며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서문식(42)씨가 대표적이다. 서씨의 자택이 있는 곳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20㎞ 남짓 떨어진 방사성물질 피폭 위험지역. 전기와 식수마저 끊었던 대지진과 쓰나미도 견뎌냈던 서씨지만 원전 폭발소식에 버틸 수가 없었다. 서씨는 "보통 지진이 나면 1분 정도면 멈추는데 이번엔 3분 이상 지속됐다"며 "천만다행으로 차에 연료가 가득해서 북서부 야마가타까지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씨 가족은 주유소마다 들러 부족한 연료를 보충해가며 우회한 끝에 만 하루가 지나서야 일본 중서부에 위치한 니가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어서 센다이를 탈출한 유학생도 있다. 현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유창호(34)씨는 "몇 시간을 기다려도 차량 한대당 20ℓ의 연료밖에 구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를 몰고는 센다이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후배 2명과 함께 있는 현금만 들고 무조건 서쪽으로 뛰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여서 걷는 덴 큰 지장이 없었지만 끼니가 문제였다. 유씨는 "편의점은 물론 모든 상점의 물품이 동이나 하루 한끼도 해결하기 힘들었다"며 "버스와 택시를 수십번 갈아타고 니가타까지 오는데 10만엔(약 140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현지 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은 센다이 거주교민들은 생판 처음 겪은 대지진의 공포와 피난살이의 어려움을 전하면서 적극적인 구호지원을 호소했다. 센다이 공항 인근에서 살았다는 김애리(29)씨는 "식량부족으로 저녁식사 한끼만 배급됐다"며 "다음 끼니를 위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3~4시간씩 줄을 서서 물과 컵라면, 건전지 등을 사야 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 수록 빵과 물 등의 배급량이 줄어드는 등 고초는 더해갔다. 씻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엄마와 함께 들어온 이지원(14)군은 "거의 1주일을 씻지 못했다.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목욕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교민들이 센다이 현지에 남았는지라 이들의 마음에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 스며있었다. 센다이에서 11년 동안 살았다는 손인자(44)씨는 "아직 여진이 있어 매우 불안한 상황인데 우리들만 먼저 나오게 돼 미안하다"며 "남편과 동료들이 남아 있어 기쁘지만은 않다. 모두 빨리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떨궜다.

영종도=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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