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단 한 개. 장면 전환은 오직 조명에 의존한다. 겨우 3명의 출연자가 노래 춤 연기를 펼친다. 요즘 유행하는 송스루(song_through) 형식과는 달리 극 전개가 대부분 연기와 대사로 이뤄진다.
한국 창작뮤지컬 1세대 작품인 '사랑은 비를 타고'의 11일 공연 모습이다. 무대가 수시로 바뀌는 요즘 뮤지컬에 비하면 한마디로 촌스럽다. 무대장치는 피아노 두 대와 쇼파, 테이블, 창, 커튼으로 꾸민 집안 거실이 거의 전부다.
앙상블의 집단 안무와 합창이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17년 전 극의 마케팅 홍보라고는 벽에 포스터 붙이는 게 전부였다. 대형 기획제작사 홍보 마케팅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반응은 아직 뜨겁다. 대장정(1995년 초연)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공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250석은 지난달 23일 개막 이래 연일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장 노릇을 하느라 마흔이 넘도록 혼자인 형(동욱)은 몸을 다쳐 한 달 전 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를 숨긴다. 집을 떠나 막일을 하다 손에 장애를 입고 돌아온 동생(동현)도 마찬가지다. 바보 같이 가족만 아는 형을 탓하는 동생과 속말을 하지 못한 채 앞치마를 두른 형의 갈등에 관객의 표정도 함께 어두워진다.
집을 잘못 찾은 가정부(유미리)의 치기 어린 유머에 함께 웃던 관객은 형제 사이의 소통과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며 어느새 눈물을 훔친다. 결국 모든 걸 털어놓은 형제는 바깥 빗소리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 연주했던 피아노 곡을 합주한다.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남긴 채 극은 마무리된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임춘길(동욱 역) 김태한(동현 역) 서지유(유미리 역)는 계속되는 노래 춤 대사에 때로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모습은 작품 자체의 재미 때문에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남경주 남경읍 최정원 등 뮤지컬 전문배우도 이 작품을 거쳐 성장했다.
스타 캐스팅도, 화려한 무대장치도, 중독성 있는 노래도, 거대자본의 홍보 마케팅도 없었지만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사랑 용서 화해 같은 진한 주제 의식과 감동적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랑은 비를 타고'는 여기에 답해 준다. 5월 29일까지. (02)764_7858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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