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의 직격탄은 맞은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 지진 발생 나흘째인 14일 조그만 항구 도시인 이곳은 그동안 가득 찼던 물이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 41개 대피소에 피신했던 사람들도 한 때 터전이 있던 곳으로 속속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죽음과 폐허가 돼버린 집터,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뿐’이었다.
전날 이곳 해안 유리아게에서는 시신 100여구가 집단으로 발견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집들은 사라졌고, 앙상한 철근과 외벽만 남은 건물에는 쓰나미와 함께 왔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검은 진흙만이 흉측하게 남았다. 바다에 있어야 할 배는 반파된 채, 쓰나미에 꺾여버린 나무들과 지상에서 나뒹굴었다. 물속에서 고기를 낚아야 할 그물은 찢어진 채 물고기가 아닌 자동차를 덮었고, 모든 일상 용품들은 부서져 쓰레기처럼 흩뿌려졌다. 도시는 입체감이 사라지고 평면이 돼버렸다. NYT는 “마치 거대한 칼이 한꺼번에 쓸어버린 광경이었다”고 전했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사람들은 시청으로 모여들었다.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까지 7만여명이 살고 있었으나, 이날 현재까지 시청 게시판에 붙은 생존자 명단은 8,340명뿐이다. 게시판 앞에는 혹시 대피했을지 모를 친인척을 찾는 생존자 20여명이 몰렸다. 와타나베 미카코(26)와 유미코(24) 자매는 어머니 유리카씨를 찾고 있었다. 간호사로 야간에 근무했던 어머니는 쓰나미가 덮칠 당시 유리아게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미카코는 “지진으로 집이 흔들릴 때 어머니가 깨셔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셨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어머니의 이름이 생존자 명단에 없자 그들은 “엄마, 우리가 찾고 있어요. 이걸 보시면 연락주세요”라는 메모를 게시판에 붙였다. 그들 옆에서는 “찾는 이름이 없다. 죽었으면 어떻게”라며 말을 잊지 못한 채 오열하는 한 여성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13개국 구조대가 도착해 생존자 수색에 들어갔다. 독일 구호대원들이 수색견이 멈춰선 곳으로 급히 달려가 잔해를 파헤치며 외쳤다. “누구 있나요? 대답해 보세요”라는 고음이 다급하고 애절하게 울렸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생존자를 찾는 수색은 이제 시신을 찾는 수색으로 바뀌었다. 한 구조대원은 “구조견들이 찾은 것은 오직 시신들 뿐”이라며 “생존자를 찾을 기회가 희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과 학업을 좇아 대도시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남아있던 노인들이 희생자의 다수라는 말도 전해졌다.
2차대전 패전에서 우뚝 선 경험마저 밝은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쟁을 경험했던 와코 히로사토(75)씨는 “전쟁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며 쓰나미의 처참함에 아연실색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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