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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장민호 백성희 '3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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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장민호 백성희 '3월의 눈'

입력
2011.03.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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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올리기 전까지 축하 꽃바구니의 꽂을, 카드를 매만지던 배우 박정자(69)씨. 한참을 생각하더니 일필휘지한다.“선생님의 무대를 바라보며 가슴이 뛰는 걸 느낍니다. 연극 배우 박정자.”곧 한 장 더 쓴다. “선생님을 하늘처럼 우러르며 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요즘 연극인복지법 제정 문제로 눈썹 휘날리며 여의도를 찾아다니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가 아니다. 백성희장민호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오빠(영화감독 고 박상호)를 따라다니며 두 선생님(백성희 장민호) 연극에 열심이었던 10대로 변신해 있었던 터다.

국립극단의 ‘3월의 눈’ 첫 공연 날이던 11일, 널찍한 기무사 수송대 부지는 중ㆍ장년 연극 관계자들의 잔치판이었다. 연극계 중진들은 다 모였나 싶을 정도였다. 원로 연출가 임영웅(75)씨는 “1968년 국립극단 연출 데뷔작 ‘환절기’부터 공동 작업한 장민호(87) 선생은 건강이 안 좋아 연습을 제대로 못 했다는데…”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실로 세월은 비껴나 있었다. 연극은 시간에 대한 가장 견실한 저항이 아닐까, 이 사이버 시대에.

수송대 창고를 리모델링했다지만 극장도 좋았다. 아직 차량의 소음이 틈입하긴 했지만 방음 문제는 곧 시정될 것이라 한다. 첫날의 만원(232석)은 연일 만원 사례의 예고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배우는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웅변했다.

단아하게 쪼그려 앉은 백성희(86)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뜨개질한다. 장민호는 뒤뜰에서 먼산 보듯 뒷짐지고 서성댄다. 퇴락하긴 했어도 결코 퇴행하지 않는 현역 최고참 배우들, 시쳇말로 존재감의 절정이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은 분투의 세월을 증거하고 있었다. 눈매는 서늘하리만치 깊어 어둠 속 관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뜯어보는 듯했다.

입심 좋은 작가 배삼식씨가 이 원로 커플을 염두에 두고 1주일 만에 완성한 대본은 “병 돌아 망한” 돼지 농사 이야기다. 그 너머 8순의 현역은 시대를 위로했다.

“환하다.” 마지막 대목에서 뜨개질한 옷을 입혀 주며 백성희가 하는 말. 천정에서 무수한 벚꽃잎이 눈처럼 흩어진다. 얼어붙은 듯 있던 객석은 암전되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기립 박수. 빛을, 그들은 보았던 것일까.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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