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과 쓰나미가 몰고 온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났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와중에 극적인 구조 소식도 하나 둘 전해지고 있다. 수몰 직전 건물에서 이틀을 버틴 양로원 환자 구조부터 임산부의 무사 출산 뉴스까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열도를 울렸다.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의 한 양로원에선 13일 오후 노인과 직원 등 80명이 구조됐다. 쓰나미가 몰아쳐 고립된 지 50시간 만이었다. 이 양로원은 해안선에서 2㎞ 떨어져 있었다. 쓰나미 발생 소식을 들은 직후 휠체어를 탄 노인들을 1층에서 2층으로 대피시킬 준비를 하던 중 30분도 안 돼 쓰나미가 밀려 왔다. 직원들이 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헤치고 노인들을 2층으로 밀어 올렸다.
이들은 옥상에서 비스킷 한 봉을 나눠 먹고 목재를 모아 불을 지피며 밤을 지샜다.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달력 뒤에 '식량', '고령자 80명'이라고 써 헬기에 고립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 13일 저녁 자위대와 소방대원들이 고무보트를 이용해 이들을 구출했다. 그러나 노인 10명은 지진 초기 1층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목숨을 잃었다. 모리 세이이치(62) 이사장은 구조 직후 "고립 기간 가능한 한 밝은 이야기를 했다. 괴로웠지만 모두 잘 참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마이니치신문은 14일 보도했다.
자위대의 활약도 컸다. 후쿠시마(福島)현 후타바(雙葉) 앞바다에선 지붕에 올라타고 표류하던 60대 남성이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에 44시간 만에 구조됐다. 자위대원들은 또 14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石卷)시에서 4개월 된 아기를 구조하기도 했다.
또 미야기현 민간항공대 학생 직원 170여명이 쓰나미를 피해 학교 건물 옥상에 대피했다 24시간 만에 구출됐고, 센다이(仙臺)시의 30대 남성은 물살에 휩쓸린 와중에도 주택 천장에 머리를 대고 호흡하며 2시간을 버텨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쓰나미를 이겨낸 새 생명 탄생 소식도 있었다. 도쿄(東京)에 살던 고바야시 유카(28)씨는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이 있는 이와테(岩手)현 미야코(宮古)시로 돌아와 있었다. 유카씨는 "출산 전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마음에 11일 오후 시내 노래방을 찾았다. 첫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건물이 흔들렸다. 만삭의 몸을 이끌어 급히 몸을 피했고, 다음날 새벽 미야코병원에서 딸을 순산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난 아이가 있지만 바다에 휩쓸리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반면 많은 인명피해가 난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南三陸)에선 안타깝게 운명이 엇갈렸다. 동사무소 여직원 엔도 미키(25)씨는 마을 위기관리과 직원들과 방재대책청사에 남아 "쓰나미가 오니 빨리 도망치라"는 방송을 했다. 그의 방송 덕분에 어머니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대피해 목숨을 구했다. 방송 후 청사 철탑에 매달려 쓰나미를 견딘 직원 10여명은 구조됐지만 엔도씨는 물살에 휩쓸려 가고 말았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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