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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상급식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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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상급식의 함정

입력
2011.03.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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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노인들까지 지하철이나 버스요금을 면제해줄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일도 없지만요. 일정한 나이만 넘으면 면제를 해주는 것이 과연 옳은 방식인지 모르겠어요."

젊은 시절 기업을 운영하면서 돈을 적지 않게 모은 분에게 들은 얘기다. 자신은 지하철이나 버스요금을 낼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면제해주니 고맙기도 하지만, 이래서 국가 재정이 버틸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약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복지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근본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으나 우리 형편에 굳이 부자들의 자녀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는가가 논란의 핵심이다. 국가 예산이 넘쳐난다면 모르겠으나 빠듯하고 부족한 예산을 다른 곳에 쪼개 써야 할 형편이다. 덕분에 학교 신설비 등 다른 교육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이다. 결국 이달 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정책 자체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고, 무상급식조례 폐지를 위한 주민투표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기자가 연수를 했던 미국 워싱턴주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유상급식이다. 물론 무상급식도 없지는 않다. 연소득이 일정한 수준 이하라면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 학기초에 무상급식을 받을 가정에 대해서 서면조사를 실시한다. 거기에 연 소득이 얼마이므로 무상급식을 원한다고 기재하면 자녀들이 혜택을 본다. 특별한 증빙서류도 필요 없어 체면이 손상할 일은 없다.

그런 사실은 처음에 교사만 알고 있으나 나중에 자녀들끼리 다 알게 된다.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별 허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왕따'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무상급식 대상 학생들의 자존심이 상할 것을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혜택과 비교할 때 적절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온 연수생이나 유학생들이 자녀들의 무상급식을 신청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문제로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없다.

무상급식 논쟁의 진행과정을 되짚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있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심한 반대를 했고, 야당은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부자들에게도 혜택을 함께 주는 것을 감수했다. 양측 모두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 혹은 국가 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급식문제를 정책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결과는 부자들의 여유자금을 활용하지 못한 채 국가가 재정적인 부담을 더 지게 된 것. 양측이 합리적으로 논쟁을 벌였다면 외국 모델들을 무리 없이 끌어와 무상급식 대상의 범위를 잘 설정할 수도 있었다.

한번 정책이 시행되면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지금 와서 부자노인들에게 지하철과 버스를 유료로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부자 자녀들은 무상급식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와중에 무상급식의 선봉에 섰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국내외 귀빈을 접대하는 의전용 관사를 만드는 조례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예산이 얼마나 남아돌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예산을 줄여 무상급식을 하겠다던 그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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