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이이~ 잘 지내셨어요?” “아이구 이게 누구야, 방학 동안 더 예뻐져서 왔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로비. 도서관 경비아저씨 이형준(67)씨는 개강을 맞아 자신을 찾아온 학생들로부터 안부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쏙 빠진 눈치다.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소리를 치며 달려온 여학생들은 비타민 음료와 초콜릿을 건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고, 남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저씨와 포옹을 나누었다. “지방에 내려간 학생들은 몇 개월 동안 못 봤으니까 더 반갑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야.”
2005년부터 이 학교 경비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도서관만 지키는 게 아니다. 취업이 안돼서, 연애가 순탄치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멘토로서, 이들의 상처 난 마음까지 지켜주고 있다.
“기자를 준비한다며 졸업 후에도 도서관에 나오던 학생이 있었는데 하루는 옥상 순찰을 돌다가 만났지. 혹시 나쁜 마음 먹은 건가 싶어 호통을 쳤더니 그냥 답답해서 올라와봤다고 하더군. 그날도 아마 어디 면접을 떨어졌던 모양이야. 100번 넘게 불합격 됐다는 얘길 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쏟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지.” 이씨는 그날부터 틈날 때마다 이 학생과 얘기를 나누며 응원했다. “부모님한테 이왕 신세지는 거 좀 더 폐 끼쳐도 괜찮다” “떨어진 회사에 미련 갖지 마라, 네가 갈 곳은 많다”며 용기를 북돋았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고배를 마시던 이 학생은 지금 한 지역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좀 더 전문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들러 자기계발서, 심리서적 등을 들쳐보며 학생들에게 어떤 말로 힘을 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 나도 덩달아 긍정적으로 변하고 힘이 나더라고.” 기자가 찾아간 이날도 한 여학생이 도와달라며 이씨에게 매달렸다. 이 여학생은 이씨가 맺어주었던 켐퍼스 커플의 친구.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청춘 사업을 내가 뭐 아나, 그냥 들어주는 거지. 한바탕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다들 만족해하더라고.”
이씨가 책까지 섭렵하며 얻은 멘토링의 비법은 웃음이다. 학생들은 이씨의 웃는 얼굴에 마음을 열고, 이씨는 아무리 어려워도 웃음을 잃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준다.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댓글로 빽빽한 이씨의 미니홈피의 대문 글도 ‘미인대칭’이다. ‘미소 짓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칭찬하자’는 뜻이다.
이씨가 웃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역시 실패를 많이 겪어본 탓. 이씨는 배고픈 시절을 겪으며 겨우 고등학교를 마친 뒤 한 일간지에 들어가 17년간 식자(植字) 일을 했다. 컴퓨터가 보편화하지 않았던 시절 활자를 뽑아 원고대로 조판을 했다. 그러나 신문작업이 현대화하고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1997년 명예퇴직을 했다. 전 재산을 털어 인쇄업체를 8년간 운영했지만 실패했다. “워낙 천성이 낙천적인 나와 달리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어. 돈을 잃은 것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웃음을 잃은 것이 더 속상했지.”
이씨는 자신의 상담 능력을 발휘해 앞으로 다문화가정상담사로 일해볼 계획이다. 벌써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씨는 “수업시간에 한 교수님이 나를 언급하며 동국대에서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며 “이 곳에서 일하는 동안 학생들이 찬란한 청춘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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