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가 되면 양반은 지방 양반과 서울 양반으로 갈라진다. 서울의 양반을 경화세족(京華世族)이라 한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귀족화한 양반으로서 경화세족은 여러 특권을 누렸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특권은 중국 북경(北京)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곧 이들만이 사신단의 구성원이 되어 당시 세계로 열린 유일한 창이었던 북경에 가서 남들이 못하는 호사스런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또 북경에서 수입하는 사치품의 주소비자였다. 정조는 중국인의 삶의 방식을 본뜨고 북경 수입품을 소비하는 경화세족의 생활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즘 사대부들이 괴상한 풍습을 좋아한 나머지 반드시 우리나라 생활 풍습을 아주 벗어나 멀리 있는 중국인을 본받으려 한다. 서책은 물론이고 일상의 생활용품까지 모두 중국제를 쓰는 것을 뭔가 때깔 나는 일로 여긴다.”
명분과 동떨어진 위선
그는 이어서 먹 병풍 붓걸이 의자 탁자 솥 술단지 등도 모두 값비싼 중국 제품을 사용하는 사치가 풍조를 이루었다며 개탄해 마지않는다. 이렇듯 청나라 생활 풍조를 본뜨고 청나라 수입품을 사용했지만, 경화세족의 청나라에 대한 인식은 극히 적대적이었다. 경화세족의 절대 다수를 이루었던 노론들은 입만 벙긋하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아야 하고, 명나라를 위해 청나라에 복수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최근 조용기 목사는 이슬람 채권 수쿠크가 들어오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하였다. 곧 사과는 했지만, 그가 목적했던 것을 이루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비판이 있었기에 여기서 다른 말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줍잖은 질문 하나만 던지고자 한다.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요즘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은 큼지막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신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승용차에 넣는 기름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중동에서 난 것이 아닌가. 물어보자. 그토록 싫어하는 이단의 땅에서 난 기름으로 굴러가는 자동차를 타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몸’을 움직여서야 되겠는가? 또 그 기름으로 만든 수많은 화학제품들은 아마도 교회의 곳곳을 덮고 있을 것이다. 이단의 땅에서 난 물질로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덮어서야 쓰겠는가?
이슬람의 땅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인다. 중동의 석유로 자동차가 움직이고 공장이 돌아간다. 중동에서 건설업을 벌이고, 중동에 전자제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움직인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쿠크 도입에 반대하는 기독교 신자라 할지라도 이슬람 국가의 석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쿠크를 반대하는 목소리에서 그 옛날 한쪽으로는 청나라에 복수해야 한다고 떠들고 한쪽으로는 청나라 사람의 생활을 본뜨지 못해 안달하던 경화세족의 위선을 얼핏 느낀다. 대명천지에 이게 무슨 짓인가.
사족. 이 글을 쓰자니 문득 신약성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마태복음 10장 9절과 10절의 것이다. 예수는 열두 사도를 이스라엘 지방으로 보내어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이를 살려주라고 하면서 이렇게 당부하신다.
성직자들의 물질적 풍족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자루나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소유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성직자는 재산을 축적하지 말라는 말이겠다.
바로 앞 8절에서는 환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대가로 아무 것도 받지 말란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즉 성직자는 일을 한 대가(요즘으로 치면 월급이나 연봉이다)를 받지 말란다. 그런데 요즘 어떤 목사님들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서 어이하여 예수님과 사도들과는 딴판으로 물질적으로 그리 풍족한 삶을 누리시는가? 정말 웃기지 않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