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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일 시인 '애초의 당신'/ 시적 실험의 절망에서 터져 나온 서정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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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일 시인 '애초의 당신'/ 시적 실험의 절망에서 터져 나온 서정의 목소리

입력
2011.03.1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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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너무 일찍 출현했었다"고 했고, 스스로는 "시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했다. 1990년대 초 파격적 형식의 실험시를 쓰다가 수년간 펜대를 꺾었던 김요일(46) 시인. 때 이른 전위적 시로 시적 불운을 겪었던 그가 등단 20여년 만에 사실상의 첫 시집인 <애초의 당신> (민음사 발행)을 내며 돌아왔다.

뜻밖에도 이전과 180도 달라진 서정적 색채의 시다. 표제작만 봐도 그렇다. "태초의 이전부터 오신다더니/꽃과 바람/물과 불/하늘과 땅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터진 듯 쏟아 내리는 별빛 속에도 물어오지 않으시고/전생의 전생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우주의 바깥에 계신 당신/ /모든 이즘(ism)의 프리즘인/처음의 줄기이자 분열의 마지막인/아, 당신은."

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94년 띄어쓰기와 문법을 무시하고 외설적 단어들이 뒤범벅된 장시 '붉은 기호등'을 발표했지만 극히 일부 외에는 냉대를 받았고 하재봉 성귀수 주종환씨와 함께 홍대 앞 클럽에서 국내 최초의 집단 시 퍼포먼스를 갖는 등 수년간 새로운 형태의 시를 모색했으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2003년까지 3년간은 아예 아무 글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시인임을 잊지 않았던 그에게 절필은 곧 절망이었고 어떤 근원에 도달하지 못한, 혁명의 실패이기도 했다. 그 끝에서 "나도 모르게 어렸을 때 품어져 있었던 서정적 기운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고가 난 차를 끌고 오던 중 흐르던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곡을 들으며, 단숨에 완성한'아바나의 피아니스트'가 시초였다. 진한 좌절은 진한 리듬으로 돌아왔다.

시집은 등단작 '자유무덤' 외에 90년대 초 발표했던 전위적 시들은 모두 버리고 2003년 이후부터 쓴 시만 모았다. "긴긴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함민복)이라거나 "오랜 유랑과 순례를 마친 집시의 모습"(박정대)이라는 동료 시인의 말처럼 시집은 극점 진입을 시도했다가 닿지 못하고 돌아온 유랑자의 그리움과 쓸쓸함이 잔뜩 배어 있다. "살아있는 죽음 속에/죽어가는 삶이 퍼덕이는 풍경"('백야'중) 을 버티면서. 그에게 낮술은 긴 말 필요 없는 딱 두 구절, '한 잔의/태양'('낮술' 중)이기도 하다. 방랑의 고질병 속에 "어디로든 가고 싶어/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묶인 배' 중) 시인은 오랜 여행 후의 깨달음으로 이제 "별빛을 바라볼 수는 없어도/항로를 벗어나지는 않으리"('밀항' 중)라고 이야기한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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