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앳된 얼굴의 박해수(25)씨 직업은 장례지도사이다. 옛날 말로 치면 장의사이다. 여자는 제사 때 절도 안 시키는 게 한국의 관습인데, 박씨는 거의 매일 시신을 염습하고, 수많은 죽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3년여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박씨는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잘 사는 것인지 많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백 억대의 부자라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빈소엔 일해주는 사람 말고는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이렇게 마지막 가는 길이 쓸쓸한데 싶었죠."
박씨는 또 "내가 후회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지 자주 되돌아보게 됐다"고도 얘기했다. "평소에 죽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친구들이 있는데 따끔하게 혼냅니다. 물론 살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후회 없는 죽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박씨는 시신을 대하는 유가족들의 태도가 안타까울 때도 많다고 했다. "시신을 만지기는커녕 쳐다보지도 못하는 가족들이 많아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만해도 부모였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모른척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죠.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게 아닌데… 우리 생애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인데…"
물론 박씨도 시신의 몸을 구석구석 닦고 수의로 갈아 입히는 염습이 아직도 버겁다. 화상이나 사고 등 훼손이 심한 시신을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지병으로 숨을 거둔 노인들의 경우 뼈만 앙상히 남아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몸을 만져야 한다. 그래서 박씨는 작은 상처라도 낼까 손톱을 기르지 않는다. 또래 친구들이 즐겨 하는 네일아트도 해본 적도 없다.
방사능사 시험을 준비하다 호기심에 대구보건대 장례지도학과에 입학한 박씨는 졸업 후 자연스럽게 장례지도사의 길로 들어섰다. 상조회사 취업을 앞두고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아빠는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냐며 혼사길 막힌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죠. 그래도 자신 있다고, 두고 보라고 했죠."
막상 큰 소리는 쳤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처음에는 유가족과 대면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수도 없고, 정색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더군요." 내달 초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박씨는 "다른 직업과 달리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일이 없을 때도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제는 고인을 편히 보내드리고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덜어드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조만간 메이크업을 배울 계획이다. "영정 사진도 곱게 화장하고 찍을 정도로 외모를 가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따님이 '우리 엄마 얼굴이 상했다'며 많이 속상해하시더라고요. 한 평생 애쓰며 살아온 분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드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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