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사내들이 세계 정상급 프로 기사의 이름과 대진표 번호를 뽑아 카메라 앞으로 손을 내민다. 장쉬, 조치훈 등 일본기원 대표 기사들의 이름이 호명되더니 곧 이어 구리, 콩지에를 비롯한 중국 기사들을 비롯해 이세돌, 최철한 등 한국 기사도 호명됐다.
지난 8일 오후 4시부터 일본기원 홈페이지(www.nihonkiin.or.jp)를 통해 생중계된 제24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본선 32강전 대진 추첨 모습이다. 일본기원은 4월 9일 후지쯔배 개막에 앞서 별도의 개막식이나 전야제 없이 미리 32강전 대진 추첨을 끝냈다.
그동안 세계 대회 본선 대진 추첨은 개막식 전야제에서 각국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일종의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게 관례였지만 올해는 이를 대폭 간소화 해 사상 처음으로 선수단 없이 대회 관계자들이 사전에 대리 추첨한 것이다. 대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추첨 실황을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한다고 거창하게 홍보했지만 실은 대회 경비 절감을 위해 행사 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점점 쇠락해 가는 일본 바둑 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추첨에 앞서 오타케 히데오 일본기원 이사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고 나름대로 최소한의 격식을 차리긴했지만 전통 있는 세계 대회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간소한 행사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세계 대회 식전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져 왔던 대진 추첨식에 각국 선수단은 물론 대회 관계자들이 한 명도 참석치 않은 채 일본측 실무자들만 자리를 지켰다고 하니 1988년 후지쯔배가 창설된 이래 이처럼 초라한 대진 추첨식은 처음이다. 더욱이 전통적으로 바둑을 예도로 여겨 대회의 품위와 격식을 강조해 온 일본 바둑계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1988년 세계 최초의 국제 기전으로 화려하게 출발한 후지쯔배는 제1회부터 5회까지 일본선수들이 우승을 독차지, 세계 최강이라 자부했던 일본 바둑의 자존심을 지켰다. 특히 다섯 차례의 결승전 가운데 세 번이 일본 선수끼리의 격돌이어서 한국 바둑팬들은 부러움 반 시샘 반의 시선으로 후지쯔배를 바라봤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바둑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후지쯔배가 한국 바둑의 막강함을 홍보하는 무대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1993년 제6회 대회 준결승전에서 유창혁과 조훈현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본의 아와지 슈조와 가토 마사오를 나란히 반 집으로 꺾고 결승에 올라 열도 한복판에 태극기를 꽂으면서부터 서서히 일본 바둑의 몰락은 시작됐다. 1997년 고바야시 고이치가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며 우승했지만 이후는 완전히 한국의 독무대였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 박영훈, 박정상 등 한국 선수들이 번갈아 가며 정상에 오르는 등 지금까지 모두 23차례 대회에서 한국은 1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선수들의 계속된 성적 부진에 주최사인 후지쯔의 실적 부진까지 겹쳐 조만간 대회 자체가 없어질 지 모른다는 소문이 몇 년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올해도 역시 대회 개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일본기원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대회 규모를 크게 줄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고 한다. 대회 일정이 축소됐고 개막식과 전야제 등 부대 행사가 대부분 생략됐다.
최근 바둑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바둑계가 어려움을 겪는 건 비단 일본의 경우만은 아니다. "그래도 후지쯔배가 올해 또 열리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드리고 싶다."
일본기원 관계자의 말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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