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취지의 '이익공유제'제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시한 이 개념이 경제학 교과서에 없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말이지만, 앞뒤로 미뤄 재계를 대표하는 재벌총수로서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가감 없이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대적 요구에 대한 고민 없이 거친 인식을 원색적으로 드러낸 것은 그의 위상과 책임에 비춰볼 때 크게 실망스럽다.
이 회장은 엊그제 허창수 회장 체제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총회에 참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어릴 적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지만 (이익공유제) 얘기는 들어보지도, 이해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긍정적 부정적을 떠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도 배우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누가 만든 말인지도 모르겠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가 봐도 "명망 있는 경제학자라는 사람이…"라며 정 위원장을 겨냥한 게 분명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부정, 긍정을 떠나 이 회장의 발언 내용과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 위원장이 민감한 사안을 충분한 검토나 전략 없이 불쑥 던져 논란을 자초한 잘못은 있다. 그렇다 해도 정부의 경기 부양이나 고환율 정책 등에 힘입은 대기업의 초과이익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연구개발 자금 등으로 지원하자는 제안은 고려할 가치가 충분하다. 협력업체를 '사회적 동반자'로 지칭한 이 회장의 말과도 어울리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선대인 이병철 회장에게서도,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이익공유제라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업보국을 강조한 선대의 정신을 생각했다면, 또 자본주의 경제학의 비조(鼻祖) 아담 스미스를 올바로 읽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들이다. 삼성과 이회장이 한국경제를 이끈 공을 인정하지만 국민들에게 진 빚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고싶은 '이건희 경제학'은 이회장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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