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상이다. 국제 기름값이 크게 오르면서 국내에서도 야간소등 절약캠페인 등 갖가지 방법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계에선 차세대 에너지 기술을 누가 선점하느냐를 놓고 경쟁이 점점 치열해진다.
물이나 유기물질로 수소를 생산해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에너지 기술은 중요한 차세대 청정 에너지원으로 꾸준히 주목 받아왔다. 하지만 수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저장하느냐가 수소에너지 상용화의 과제였다. 고유가 시대에 국내 연구진이 고성능 수소저장체를 개발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고체여야 하는 이유
수소를 발전(發電)에 이용하려면 연료전지가 필요하다. 연료전지 안에 들어온 수소분자는 전자와 수소이온으로 분해된다. 이 전자가 회로를 돌며 전기를 발생시킨다. 수소이온은 바깥에서 연료전지 안으로 유입된 산소와 반응해 물이 돼 빠져나간다. 부산물로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을 만드는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는 물만 내놓는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자동차를 가동하면 수소 4kg으로 약 300km를 달릴 수 있다. 물론 자동차에 수소를 저장해 다녀야 한다. 결국 얼마나 많은 수소를 얼마나 적은 부피에 넣을 수 있느냐가 상용화 여부를 결정한다.
수소는 가스(기체)와 액체, 금속수소화물(고체) 등 여러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액체나 고체 상태로 저장하려면 별도로 온도나 압력을 높여야 한다. 에너지를 내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체 상태로 저장하기엔 단위부피당 넣을 수 있는 수소 밀도가 너무 낮아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문회리 울산과학기술대(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와 전기준 울산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제프리 어반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은 고체 상태로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재료과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 13일자 온라인판에 소개됐다.
채 썬 당근 박아 넣은 계란찜
연구팀이 사용한 고체는 마그네슘이다. 마그네슘은 지구에서 7~8번째로 풍부한 원소다. 그만큼 싸고 또 가볍다. 마그네슘은 공기 중에 두면 수소와 산소, 수분을 끌어들이는 성질이 있다.
특히 수소분자가 마그네슘 표면으로 들어오면 2개의 수소원자로 쪼개진다. 수소를 저장할 때 분자 자체를 저장하면 주변 환경에 따라 쉽게 변형될 수 있어 원자 상태로 저장해야 하는데, 보통 수소분자를 원자로 쪼갤 때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그네슘은 따로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수소를 원자 상태로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그네슘을 그대로 이용하면 산소도 함께 끌어들인다. 산소가 마그네슘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 마그네슘산화물이 표면에 달라붙는다. 이게 많아지면 표면이 막혀 수소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보통 마그네슘은 공기 중에 단 밀리초(1,000분의 1초)만 둬도 표면이 마그네슘 산화물로 가득 찬다. 금방 저장능력을 잃는다는 소리다.
연구팀은 마그네슘을 5나노미터(1nm=10억분의 1m)의 미세한 입자로 만든 다음 산소와 물은 튕겨내고 수소만 통과시키는 고분자물질에 박아 넣어 새로운 저장체를 만들었다. 마치 계란찜에 잘게 채 썬 당근 조각이 박혀있는 모양이다. 계란찜(고분자물질)과 당근(마그네슘 입자)의 비율은 4:6 정도다. 연구팀은 이 저장체를 공기 중에 3일 동안 놓아둬도 표면에 마그네슘 산화물이 거의 생기지 않음을 확인했다.
문 교수는 "우리가 만든 저장체는 전체 무게의 6%까지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며 "보통 연료전지가 작동하는 온도(180~220도)에서 이 정도로 수소를 저장하는 고체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온도를 추가로 올리지 않고 연료전지 자체의 온도로도 수소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같은 부피에 기체상태일 때보다 약 2배, 액체보다 1.3배 더 많은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안전성도 낫다. 수소를 액체나 기체상태로 저장하면 용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폭발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고체 안에 갇혀있을 땐 공기 중에 노출된다고 해서 바로 폭발 같은 화학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상용화는 10년 더 기다려야"
과학자들은 고체 저장체는 보통 전체 무게의 약 5%만 수소를 저장할 수 있어도 상용화에 접근했다고 본다. 이번에 개발된 저장체는 6%이니 이미 상용화 기준은 넘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이번 연구는 저장체 1g으로 실험한 결과다. 상용화를 위해선 수kg까지 규모를 늘려야 한다.
저장체에 사용한 고분자물질도 개선이 필요하다. 250도 정도의 고온에 오래 있으면 점점 물컹물컹해져 안정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문 교수는 "이번 기술이 안전성과 경제성을 모두 갖춘 고체 수소저장체 상용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상용화까지는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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