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네이더 지음
꾸리에 발행ㆍ544쪽ㆍ2만7,000원
500여쪽에 달하는 책이 한숨에 읽힌다. 다 읽고 나니 미국 영웅주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아 흥미롭지만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는다.
저자 랄프 네이더(77)는 1965년 31세에 <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 로 거대 자동차 기업인 GM 차량의 안전 문제를 고발해 사장으로부터 공개사과를 받아낸 미국 소비자운동의 대부다. 96년부터 미국 대통령선거에도 네 번이나 출마하며 '소수에서 다수로 권력을 이동시키겠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 그가 상위 1% 이내의 세계적 갑부들이 사회를 구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책을 쓴 까닭은 뭘까. 단 이 책은 절대 소설이나 실화가 아니며, 굳이 분류하자면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라고 저자는 책 첫 머리에서 선을 긋는다. 어떤>
책은 2006년 1월 하와이 마우이섬의 한 호텔에서 시작된다. 17명의 억만장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실제는 아니지만 실존 인물인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시니어, 폴 뉴먼, 버나드 라포포트, 오노 요코 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1년이라는 시한을 정하고 사회 개선을 도모한다.
내용은 실로 유토피아적이다. 17명은 부자들 450명이 빈민 30억명이 소유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 통탄한다. 이에 시장만능자본주의와 정부의 기업에 대한 특혜 정책이 이 같은 사회적 불평등을 가져왔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앞장서서 찾아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들은 '사회 개선론자'라 스스로를 칭하고, 구체적 행동에 나선다. 환경 문제를 상기시키기 위해 태양신축제를 기획하고 대마초 합법화를 위해 백악관 앞에서 화분에 산업용 대마의 씨를 뿌리는 화분혁명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금권정치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의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보고 깨끗한선거당을 창당하고, 최저생활임금 보장, 의료보험법 개정과 전면 확대, 조세 개혁 등'공익을 위한 입법 의제'를 상정한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대통령을 감동시키고, 대통령은 이들이 상정한 의제를 산업용 대마로 만든 펜으로 서명했다. 이후에도 이들은 인간 조건 개선을 위해 매진한다는 얘기로 책은 끝맺는다.
꿈 같은 얘기로 치부해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맷값 폭행, 비자금, 횡령 등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에서 이들 같은 갑부들이 나오길 바라는 기대 때문일터. 그렇기에 이 책은 오히려 한국 사회 재벌과 사회지도층이 읽어 보는 게 더 좋겠다. 이들이 단지 돈만 내놓는 기부가 아닌 몸소 사회적 변화를 위한 실천에 앞장섰다는 데 감동이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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