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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부적절한 공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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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부적절한 공직자들

입력
2011.03.1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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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부시장과 대학 총장을 역임한 L씨는 2남 1녀를 결혼시키면서 한 번도 청첩장을 찍지 않았다. 최근에도 딸을 출가시킨 뒤 두 아들 때와 똑같이 부부 명의로 편지를 보냈다. 딸이 언제 시집을 갔으며 그 동안 뭘 공부했고, 신랑은 어떤 사람이며 이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고 알리는 인사장이었다. 가족들만으로 혼례를 치른 데 양해를 구하고, 새 부부를 응원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남의 경조사를 챙기지 않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전화로 '항의'하자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랬다는 말만 했다.

상하이 스캔들이 알려주는 것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달 초 미국 출장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중도 귀국하지 않았다. 일정을 다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빈소로 직행했다.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가족과 권익위원회에 부탁하고, 장례식장 입구에 써 놓는 상주 명단에서 자신과 남편 강지원 변호사의 이름을 뺐다. 강 변호사도 2004년 3월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 주변에 알리지 않고 라디오 생방송도 했다고 한다.

참 모진 사람들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한 것은 낭비적이고 과시적인 경조사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스스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들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인의식일 것이다. 경조사로 돈을 받을 경우 뇌물이 끼어들 수 있고 부적절하게 신세를 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동안 남들에게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하는 생각을 한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사실 경조사를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른 공직자들은 많다.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인가, 다른 행동과 견주어 일관성이 있는가가 문제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는 부조를 받지 않지만 집으로 보내오는 것을 선호하고 환영하는 공직자들도 많다.

우리 공직자들의 공직의식은 해가 갈수록 오히려 무뎌지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를 제창한 이후, 공정하지 못한 공직사회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문제가 많아도 인사청문회에서 잠시 납작 엎드리면 그만이고, 부적격자로 몰려 쫓겨난 사람도 조금 있으면 정치권에서 끌어들이려고 안달을 한다. 공정사회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직 인사를 바르게 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와 정 반대다.

어느 대기업의 대표는 인사청탁을 일절 받지 않는다. 누가 채용을 부탁하면 인사부서에 이름을 알려 놓고, 그가 채용됐을 경우 전형내역을 꼼꼼히 따져 자신이 납득할 수 있어야만 결재한다. 부탁을 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본다고 불평하던 친척과 지인들은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할 정도로 공정인사의 기틀이 잡혔다.

사기업도 이런데 정부의 인사가 올바르지 못하면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세 진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겠지만, 신세를 갚는다 해도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자리에 쓰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 사기업의 대표도 신세 진 사람은 많고, 공기관이나 관변단체의 압력성 청탁도 있지만 인사원칙을 허물지 않고 있다.

지금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하이 스캔들의 등장인물들은 중국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 스캔들의 원인은 많지만 공직에 부적절한 인사를 부적절한 자리에 앉혔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고 본다. 그런 기관장 아래에서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문제가 생길 경우 그런 기관장은 수습할 역량이 없다. 근본적으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공직의식 높은 사람들 중용을

굳이 김영란 위원장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방미활동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방문대상인 미국 기관의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조의를 표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 것이다. 공인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그런 사람들을 알맞은 자리에 잘 쓰고 우대해야만 공직사회가 바로잡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딱하고 걱정스럽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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